봄날 친구를 찾아가다
봄날 친구를 찾아가다
  • 김태봉<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18.04.02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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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사람들은 겨우내 찾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던 곳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가족이 남아 있는 고향 집이나, 가까운 친구가 기거하는 먼 마을 같은 데가 봄이 되면 가고 싶어지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명(明)의 시인 고계(高啓)도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겨우내 가고 싶었던 친구 집을 찾아 나섰다.

친구를 찾아가다(尋胡陰君)

渡水復渡水(도수부도수) 물을 건너 또 물을 건너서
看花還看花(간화환간화) 꽃을 보고 또 꽃을 보면서
春風江上路(춘풍강상로) 봄바람 부는 강둑길 가다 보니
不覺到君家(불각도군가) 어느새 그대 집에 다 왔구려


시인이 친구를 찾아가는 길은 간단치 않다. 강을 건너고 또 건너서야 도달할 수 있는, 그야말로 멀고도 험한 길이다. 그런데 이런 고된 여정에 시인은 왜 나선 것일까? 고향 집 부모님을 뵈러 가는 것도 아니고,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겨우내 못 보았던 친구 얼굴을 한 번 보기 위해 길을 나섰을 뿐이다.

시인이 생존했던 14세기 중반에 강을 몇 번씩이나 건너야 하는 여정은 얼핏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겠지만, 시인은 이것저것 계산하지 않고 선선히 길을 나섰다. 오로지 친구 얼굴 한 번 보겠다는 일념으로 말이다. 세속에 물들지 않은 동심을 지닌 시인의 모습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그런데 시인은 계산 없는 이 여정에서 망외의 큰 소득을 얻게 된다.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꽃이었으니, 비록 멀고도 험한 길이었지만, 피곤하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소득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게 강가의 봄바람이라는데, 이를 돈 한 푼 안 들이고 실컷 맞는 시인의 마음은 즐겁기 그지없었다. 시인이 겨울에 가지 못했던 친구 집을 봄에 가기로 한 것은 날씨와 도로 여건 때문이었을 것이다. 꽃과 봄바람을 의식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날씨가 풀려 뱃길도 사람 길도 열렸기 때문에 길을 나선 것이고, 멀고 험한 길이라 무척 힘이 드는 것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터였다. 그런데 꽃구경에, 봄바람 쐼에 정신이 팔려 걷는 줄도 모르고 걷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어느새 친구 집이 나타났던 것이다.

봄이 오면 같이 오는 것이 그리움이다. 겨우내 여러 가지 여건으로 제약을 받던 마음들이 빗장을 풀고 그리운 사람을 그리운 곳을 떠올리게 된다. 이럴 때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무작정 길을 나서는 게 상책이다. 꽃과 봄바람이 그리움 찾아 떠나는 이를 응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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