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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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헌경<진천여중 사서교사>
  • 승인 2018.03.19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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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 이헌경

시골 주택에 살았던 나의 집 마당에는 늘 강아지(때로는 강아지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큰)가 한 마리씩 있었다. 요즘처럼 집 안에서 동고동락하는 애완의 개념보다는 충직한 플란다스의 개처럼 집을 지켜주는 존재였다. 밤에는 마당에서 낮이면 집 앞 사과밭에서 생활을 했다. 지금은 키우지 않지만 어릴 적 `개밥 주고 와~.' 하시던 부모님의 목소리가 아직 생각난다.

어릴 적 나도, 지금의 나도 동물을 크게 예뻐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귀여워 쓰담쓰담 했던 기억보다는 바라보고 돌아오거나 무심히 `안녕!' 인사만 건네는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아이가 동물원을 가고 싶다고 할 때면 살짝 머뭇거리게 된다. 그리고 동물원 특유의 냄새부터 먼저 떠오른다.

어릴 적부터 자연에서 뛰어노는 것을 좋아한 아베 히로시는 여러 직업을 거쳐 동물원 사육사가 되었다. 지금은 동화 그림 작가로 유명하지만 작가가 되기 전, 그의 삶과 작품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친 사육사로서의 이야기가 아주 흥미로웠다. 그리고 동물원에 대한 그의 애정과 동물원 동물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그의 진심이 나의 생각을 바꾸었다.

`무엇을 위해 동물원이 있는 걸까.'

사육사들의 고뇌처럼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동물원 이용자로서 인간들의 흥미와 여가를 위해 만든 이기적인 결과물이라고 단정 지었다.

동물원의 동물은 야생에서보다 오래 산다. 야생의 동물에게도 동물원의 동물에게도 각자의 `역할'이 있다. 난 이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 `동물원'에서 느꼈던 차가운 쇠창살 안에 갇힌 외롭고 쓸쓸하며 야생의 본성을 잃어버린 안타까운 이미지가 컸다. 영화 `마다카스카'를 보면서도 동물원 생활에 만족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는 사자 알렉스를 보면서 동물의 본성, 야생을 잃어버린 모습이 안타까웠다. 난 큰 사실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야생의 동물이 아니라 `동물원의 동물'이라는 것이다. 야생의 동물과 동물원의 동물은 같을 수 없다는 것을 무시한 채, 동물원의 동물에게서 내셔널지오그래픽과 다큐멘터리에서 본 야생의 모습을 찾으려한 것이다. 환경이 사람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동물 역시 그러하다는 것, 동물원의 동물들은 그들답게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퀴퀴하고 코를 움켜쥐게 되는 동물원의 냄새가 `생명의 냄새'라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동물원은 살아있는 생명, 동물을 만나러 가는 것이지 야생의 동물이 인간의 욕구와 즐거움을 위해 우리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존중한다.

아베 히로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사서교사가 되고 나서 그림책에 한참 빠져 있을 때 만난 `가부와 메이 이야기'중 첫 책인`폭풍이 치는 밤에'덕분이다. 늑대와 양의 만남을 두근두근 거리게 만들었던 이야기와 어린아이가 그린 듯 심플하면서도 특징이 살아있던 그림과 컬러들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동물 이야기들은 오랜 기간 사육사로의 경험이 살아있는 진심 가득한 작품이었기에 그 책을 읽은 어른인 나도. 순수한 어린 아이들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진심'나와 마주하는 모든 대상과 상황에 대한 `진심'이 나를 아름답게 성장시킨다는 것을 오늘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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