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리부동과 지행합일
표리부동과 지행합일
  • 방석영<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18.03.0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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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 방석영<무심고전인문학회장>

미투 운동의 끝은 어디인가? 서 지현 검사가 안 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불붙기 시작한 미투 운동이 법조계, 문학계, 연극-영화계 등을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안 희정 전 충남지사가 현직에 있으면서 자신의 정무비서인 김지은 씨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했다는 의혹에 휩싸임에 따라 정치계로까지 급속 확산되고 있다.

안 전 지사의 정무비서인 김씨는 지난 5일 방송된 JTBC와의 인터뷰에서 “안 지사가 미투 운동이 사회적 이슈로 급부상하던 지난달 25일에도 자신이 저지른 성폭행에 대해 미안하다고 사과한 뒤, 또다시 성폭행을 했다”며 “안 지사한테 벗어날 수가 없겠다”는 절망감에서 폭로를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씨는 또 “방송이 나가는 오늘까지도 안 지사로부터 미안하다는 전화를 받았다”며 “앞으로 닥쳐올 수많은 일들이 두렵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안 지사다. 이 방송을 통해서 국민들이 저를 좀 지켜줬으면 좋겠다.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걸 알기에 용기를 주고 싶어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안 전 지사가 현직에 있으면서 자신의 정무비서를 수차례 성폭행 했다는 혐의보다 국민들을 더욱더 실망케 하는 것은, 미투 운동에 적극 공감하고 지지하는 것 같은 위선을 보임으로써, 파렴치하고 표리부동한 면모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점이다. 김 씨가 JTBC와 인터뷰를 하던 당일 안 전 지사는 충남도청에서 열린 `3월 행복한 직원 만남의 날'에서 “미투 운동은 남성 중심적 성차별 문화를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전제하고, “성 평등 관점에서 인권 유린을 막아내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자”고 강조한 뒤, “성차별과 성폭력의 문화를 극복해 인권을 진정으로 실현하는 일이 곧 민주주의의 마지막 과제로 인권도정이 계속해서 지켜질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며 자신의 정의로운 이미지 가공을 위한 언행불일치의 전형을 보였다.

안 전 지사는 김씨의 폭로와 관련, “합의한 관계였다. 강압이 없었다”고 해명했다가, 바로 다음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저로 인해 고통을 받았을 김지은 씨에게 정말 죄송하다. 저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이다. 오늘부로 도지사 직을 내려놓고 일체의 정치 활동도 중단하겠다”며 말 바꾸기를 시도했다. JTBC 취재진에 의해, 안 전 지사가 김씨 외에도 자신이 설립한 싱크 탱크 `더 좋은 민주주의연구소' 여성 연구원 A씨를 1년여에 걸쳐 수차례 성폭행과 성추행한 것으로 추가 확인됨에 따라, 페이스북을 통해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 것마저 급한 불을 끄고 보자는 계산된 의도가 아니냐는 비난마저 일고 있다.

안 전 지사가 충남도청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성 평등 관점에서 인권 유린을 막아내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자”며 “성차별과 성폭력의 문화를 극복해 인권을 진정으로 실현하자”고 주장한 것만 봐도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잘못을 잘 알고 있으리란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면서도 안 전 지사가 해서는 안 될 성폭력 대상을 바꿔가면서까지 습관적으로 자행해 왔다는 것은, 아는 바를 행동으로 옮기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올곧은 삶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반증하고 있다. “知之者不如好之者(지지자불여호지자) 好之者不如之者(호지자불여락지자)”, 즉 단순히 머리로 아는 것은 온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온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은 온 몸으로 실천하며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공자님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더 가슴 깊이 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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