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소리
봄이 오는 소리
  • 반영호<시인>
  • 승인 2018.03.01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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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반영호<시인>

고개 너머 밤나무골을 갔다. 어릴 적 선친을 따라 자주 갔던 곳이다. 골짜기는 잔달뱅이 논이 지형 따라 구불구불한 계단식의 천수답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 그 논들은 온데간데없고 참나무와 물오리나무만 우거진 숲이 되었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아득한 기억 속의 흔적은 여전히 선하게 남아 아직도 카랑카랑하신 아버지의 소 부리는 목청이 골짜기를 쩌렁쩌렁 울려 메아리치는 듯하다.

입춘이 지나고 우수가 지났건만 봄은 아직 저만치 있는지 응달쪽에는 잔설이 복병처럼 웅크리고 있다. 겨우 내 을씨년스레 서 있는 나목들은 경칩이 지나야 기지개를 켜려나? 긴 잠에서 깨어나 맑은 햇살에 세수하고 수줍게 미소 짓는 버들개지. 가만히 들여다보면 보드라운 솜털이 뽀송뽀송한 것도 같고 아직 설 잠에 비몽사몽한 눈물 젖은 아기의 초롱초롱한 눈매 같다.

인적 끊긴 적막한 겨울산은 음산하다. 더우면 벗고 추우면 껴입는 우리네 삶과는 달리 수북이 달았던 나뭇잎을 모두 떨구고 쓸쓸히 서 있는 겨울나무들이 애처롭다. 유난히 춥던 겨울이었다. 매서운 한파가 졸졸 흐르던 골짜기의 물줄기를 꽁꽁 얼려 놨다. 조용히 귀 기울이면 얼음장 밑에서 간간이 들리는 물소리. 아! 살아있구나. 계곡은 혹풍한설 속에서 꺾이지 않고 차가운 빙하에서 꿋꿋이 버티고 있었구나.

저만치 참나무 꼭대기에 겨우살이가 눈에 척 들어온다. 삼라만상이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겨울날에 여봐란듯이 유아독존 살아있는 파란 겨우살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하나된 열정'을 대회 슬로건으로 내걸고, 지난 9일 개회한 지구촌 최대의 겨울 스포츠 축제, 제23회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가 25일 저녁 8시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서의 폐회식을 끝으로 전 세계를 뜨겁게 하나로 만들었던 17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분단국가에서 열리는 대회였으니 다수 국가들이 안전문제로 불참하려고 하여 이번 대회는 처음부터 걱정이 많았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예상을 뒤엎고 평화 올림픽으로 승화되었다. 개막식에 북한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이 참석했고 폐막식엔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딸 이방카가 참석하여 이목을 집중시켰다.

김정은 위원장 특사자격으로 개막식에 온 김여정은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접견하여 김정은의 친서인 초청의사를 전달했다. 또한 폐막식에 참석차 내려온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은 대통령과 회동한 자리에서 미국과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는 입장을 보였고,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오찬회동 자리에서도 북한은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밝혀 화해의 물꼬가 트일 기회가 엿보였다. 이제 그들은 돌아갔다. 북한이 북미 대화 의사를 밝힘에 따라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평양 도착 이후 북한의 대미 정책에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이런 좋은 분위기에도 남남갈등이 커지고 있다. 왜 하필 김영철이었는가. 김영철은 천안함 폭침 주범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천안함 유족이 반발하고 있고, 정치권에서는 연일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남남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정부는 이를 예상하지 못했을까. 상대가 누구이며 과거 행적이 어땠는가에 집중하기보다,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실질적인 대화가 가능한 상대인지 여부에 집중했다고 한다. 아무튼 평창 평화올림픽에 즈음한 이 해빙의 기회가 북미대화로 이뤄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낼지 관심이다.

추위 속에서도 푸르렀던 겨우살이는 씩씩했다. 역으로 숨죽여 지냈던 나목들이여! 봄은 온다. 남쪽으로부터 훈풍이 불어오고 있다. 머지않은 날에 경칩이 돌아오고 봄은 다시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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