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독, 진솔한 배려를 생각하다
오도독, 진솔한 배려를 생각하다
  • 이헌경<진천여중 사서교사>
  • 승인 2018.02.19 2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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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 이헌경

두 달 정도 내 자리 뒤 창가에서 날 바라본 소년이 있다. 초점 없는 눈동자, 무심한 눈썹. 무엇 때문에 이렇게 유명세를 타고 있는지 이제 이 소년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싶었을 때, 한참을 마주 보고만 있었다. 소년도 나도 그저 담담했다.

도서 `아몬드'(손원평 지음·창비)의 주인공 선윤재. 이 소년의 이름이다. 보통의 아이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알렉시티미아 즉 감정 표현 불능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슬퍼도 슬픈 감정을 느낄 수가 없다. 우스워도 웃고 싶은 감정을 느낄 수가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공포'를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조금 특별한 윤재가 언제나 `정상'의 범주 속에 살아가기를 엄마는 희망했다.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학습을 통해서라도 알기를 원했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아들이 살아가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이다. 참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엄마도 윤재도.

`화내야 할 때 침묵하면 참을성이 많은 거고, 웃어야 할 때 침묵하면 진중한 거고, 울어야 할 때 침묵하면 강한 거다. 침묵은 과연 금이었다. 대신 `고마워.'와 `미안해.'라는 말을 습관처럼 입에 달고 있어야 했다. 그 두 가지 말은 곤란한 많은 상황을 넘겨주는 마법의 단어였다.'

윤재가 알아버린 말의 힘을 나 역시 경험하며 지내지만 정말 그것이 올바른 것인가 불편하게 느끼고 있었다. 참을성이 많은 것이 좋은 점인 것 마냥, 말이 많으면 실수가 잦고 가벼운 사람인 것 마냥 여겨지는 사회적 시선. 아주 불편하다. 비단 이뿐 만은 아닐 것이다. 새 학급 친구들에게 곤이를 소개하는 담임교사의 말에서도 곤이를 배려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부분을 다른 사람의 감정보다 자신의 감정만을 고려해서 자신의 입장에서 일방적인 배려를 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학습을 통해 감정을 배우기를 원했던 엄마의 노력에도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한 윤재는 친구 곤이와 도라를 만나면서 두려움, 미안함, 사랑을 알아갔다. 그리고 그 이면의 것들도 윤재는 경험을 통해 알아갔다.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윤재가 말하는 사회화 된 우리의 역설적인 부분들을 읽으며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어른의 관점에서 사회는 이런 곳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듯 강요하고, 그 아이들 역시 그런 사회가 잘못되었더라도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곳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참으로 부끄러웠다. 나 역시 어느덧 어설픈 어른이 되었나 보다. 내 머릿속의 아몬드도 어딘가 조금 고장 난 모양이다.

`울지 않는다고 슬프지 않은 것이 아니야, 웃고 있다고 기쁜 것만이 아니듯이 말이야.'

드라마를 보다 남자 주인공의 대사가 귀에 천천히 들어온다. 나에게 `괜찮다, 괜찮다.'한다. 솔직하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세상에서 솔직하지 못하는 일상과 관계에 지치고 지치는 나. 머리에 좋다며 꼭 챙겨 먹으라던 엄마의 말씀 덕분에 늘 주방 한켠에 자리하고 있던 아몬드를 먹어본다. 오도독 오도독 씹히는 소리가 좋다. 오도독 아몬드 한 알 씹으며 진솔과 배려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와 네가 함께 웃을 수 있는 진솔한 배려를 아몬드를 통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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