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 매화
산속 매화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8.02.19 20:0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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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세상 모든 사물의 끝자락은 안타깝고 씁쓸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겨울의 끝자락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2월의 꽃 매화가 은은한 향기를 발하는 때가 이 무렵이기 때문이다. 겨울을 떠날 때 모습이 아름다운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은 매화이니, 겨울에게 매화는 자기를 이겨낸 꽃이 아니라, 자신의 말년을 장식해주는 고마운 꽃이다. 고래로 이러한 늦겨울의 꽃 매화를 아낀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남송(南宋)의 시인 임포(林逋)는 유달랐다. 유명한 그의 매화 시를 한 수 보기로 한다.

산속 매화(山園小梅)

衆芳搖落獨暄姸(중방요락독훤연) 온갖 꽃 떨어진 뒤 홀로 곱고 아름다워
占盡風情向小園(점진풍정향소원) 풍정 다 차지하고 작은 정원 향해 섰네
疎影橫斜小淸淺(소영횡사소청천) 성긴 그림자 맑고 얕은 물에 기울고
暗香浮動月黃昏(암향부동월황혼) 은은한 향기 달빛 어린 황혼에 떠도네
霜禽欲下先偸眼(상금욕하선투안) 겨울 새 내리고자 먼저 몰래 훔쳐보고
粉蝶如知合斷魂(분접여지합단혼) 흰 나비 향기를 아는 듯 혼을 잃네
幸有微吟可相狎(행유미음가상압) 다행히 시를 읊조리며 친할 수 있으니
不須檀板共金樽(불수단판공금준) 악기나 술 항아리도 필요 없으리

고래로 수많은 사람이 애송해 마지않은 매화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시인은 자신만의 눈으로 매화의 매력을 하나하나 확인해 간다. 시인이 만난 매화는 산속 정원에 있는 작은 매화이다. 그러나 덩치가 작다고 해서 존재감마저 작은 것은 결코 아니다. 나름의 화사함을 뽐내던 꽃들이 모두 지고 없을 때 홀로 곱게 피어 있으니 덩치와 상관없이 그 존재감은 독보적일 수밖에 없다. 마땅히 볼만한 풍정이 없는 겨울에 매화는 풍정 그 자체이다. 정원 같지도 않은 작은 정원 속에 있는 한 그루 작은 매화가 겨울 풍정의 전부라는 것이다.

매화의 매력은 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뭇잎이 나기 전의 성긴 모습 또한 매화의 매력이다. 그 성긴 가지가 맑고 얕은 연못물에 비춘 모습은 가히 그림이다. 다음으로 향기를 빼놓을 수 없다. 초저녁 달 아래 떠다니는 향기는 요란하지 않고 은은한 것이 매력이다. 매력 덩어리 매화는 사람들만의 차지는 아니다. 새도 나비도 매화를 좋아하긴 마찬가지이다. 마지막으로 시인에게 매화는 시를 절로 읊게 만드는 촉매제이다. 술이나 음악이 없어도 매화만 보면 시가 술술 나오는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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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물 2019-04-27 06:31:01
疎影橫斜小淸淺(소영횡사소청천)
성긴 그림자 맑고 얕은 물에 기울고

→ 小가 아닌 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