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자<수필가>
  • 승인 2018.01.2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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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기자

설레며 길을 나섰다. 소꿉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코끝이 싸할 만큼 차가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며 마음은 부풀어 오른다. 기차에 올라 창밖을 바라보노라니 저만큼 또 다른 길이 나를 따라오는 듯하다.

그 위로 연신 달음질하는 자동차들이 보인다. 모두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모습에서 길은 땅 위의 실핏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실핏줄과도 같은 삶의 인연을 따라 오늘에 이르렀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마당에서 내 작은 존재가 새삼 흥미로운 시간을 맞게 된 것이다.

나는 지금 누구인가, 어디로 가며 어디로 돌아와야 하는 걸까, 하는 의문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길 위에 있는 나, 오늘은 왠지 무한한 자유에 빠지고 싶어졌다.

약속장소에 다다랐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이라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부둥켜안고 어쩔 줄 몰라 한다. 세월의 흔적들이 얼굴 전체에 서려 있지만 전혀 낯설지 않아서 좋다.

서로가 꺼내 놓는 이야기들이 지루하지 않을뿐더러 까마득한 시절로 돌아간 듯 동심의 세계에 빠져든다.

주된 이야기는 과거로부터 시작되었다. 거의가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친정집들도 비어 있는 상태이지만 우리는 옛 이야기의 길을 더듬으며 한참 동안 걸어야 했다.

들리고 보이는 듯한 영상들이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어느새 멀어져 있던 세월의 간극이 좁아지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묵혀 두었던 길을 따뜻한 가슴으로 열어가면서 서로를 보듬는 중이다. 그 길 위에서 또 다른 소중함을 나누어야 했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왜 그리도 가야 할 길이 빨리 달려오는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기차에 올랐다. 마치 연인들이 뜨겁게 작별하는 것처럼 돌아섰다.

그동안 부족한 여유의 삶을 지켜오느라 선뜻 나서지 못했던 길이었지만 이제는 자주 찾아 나서자며 약속하고 헤어졌다. 다시 이어지는 길을 향해 가면서 조용히 고개를 돌린다. 멀어지는 길 위로 못다 한 많은 이야기들이 꼬리를 드리우고 있다.

오늘 다녀온 길은 우정의 길이었다.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지만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흥분을 감출 수가 없다. 세월이 깊어질수록 점점 찾아들고 싶은 마음의 길이었나 보다. 언제든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곳, 어깨가 비좁아도 함께 거닐 수 있는 곳, 바로 그곳이 친구라는 존재의 길이었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지금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고 곁에 있는 듯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각자의 삶이 다른 모양이듯 생각보다 쉽지가 않은 현실이 아니던가.

이렇게 갈구하던 길을 찾아 나선 것은 정말 오랜 기다림이었다. 이제 그 기다림의 문을 붙들고 우리는 살아 있다는 의미에 충분히 젖어 들어갔다.

우정의 길을 다녀온 후로 삶의 활기는 더해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직 남아 있는 내 인생의 몫에서 그 길도 필요한 요소 중의 하나였다. 이 또한 살아가면서 누릴 수 있는 하나의 행복이 아닐까 싶다.

잠깐의 여유였지만 좋은 여운을 심어 놓은 길이었다. 그리고 어제라는 시간이 오늘의 길로 나를 데려다 준 선물이기도 하다. 이어서 내일이라는 곳으로 나를 다시 데려다 줄 터이다. 삶의 바탕으로 이어지는 모든 길들이 순탄키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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