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
발자국
  • 김순남<수필가>
  • 승인 2018.01.2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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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순남

젊음의 활기가 넘쳐나던 대학교가 방학을 맞아 썰렁해졌다. 학생들이 생활하던 기숙사도 축구시합을 하던 운동장도 텅 비었다. 넓은 운동장 눈 위에 수많은 발자국이 새겨져 있다. 학생들은 넉 달 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생활하다 학기가 끝나자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발자국의 주인공들이 부모님 곁에서 못다 한 정을 나누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허전하던 마음이 조금은 훈훈해진다.

눈길 위에는 내가 걸어온 발자국도 새겨져 있다. 바르게 잘 걸어온 발자국도 있지만 삐뚤삐뚤 걸어온 발자국도 있지 않은가. 생활관에 근무하며 학생들과 있었던 많은 일이 스쳐 지나간다. 늦은 밤 응급상황이 발생할 때, 부모 슬하를 벗어난 학생들이 과도한 음주로 위험에 처할 때 등 가슴을 졸이는 일들이 많았다. 큰 사고 없이 한 학기를 잘 보내준 학생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그들이 머물다 떠난 생활관 곳곳에 흔적들이 남아있다. 새 학기에 낯선 타인과 만나 친구, 선배, 후배들과 공동생활을 하며 생활규칙들을 적어 출입문에 붙여놓았다. 자신에게 새로운 다짐들을 적은 글귀들이 주인 떠난 방을 지키고 있다. 그들은 환경과 성향이 조금씩은 다른 타인들과 만나 생활하며 어떤 관계를 형성했을까.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실현하려던 초심들은 얼마나 실천했을지 궁금하다.

업무 중 학생들이 애로사항을 의논해오면 해결을 해줘야 하지만, 때로는 입장이 곤란할 때가 있다. 무엇보다 같은 방 친구와 사소한 일로 사이가 좋지 않아 방을 바꿔달라는 제안을 받을 때이다. 학생들이 원하는 대로 해결해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뜻대로 해주기가 어렵다 보니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이다.

생활관 뒤편 눈 위에 큰 하트 모양이 새겨져 있다. 발자국 모양으로 보아 한 쌍의 연인의 흔적이지 싶다. 며칠 전 눈 내리는 밤에 추운 줄도 모르고 사랑이야기를 쏟아 놓았으리라. 잠시 헤어짐의 아쉬움과 핑크빛 마음이 발자국마다 새겨진 듯하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눈 위에 흔적들은 없어지겠지만, 그들 마음에 새겨진 사랑의 추억들은 오래오래 지워지지 않기를 빌어본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학생들도 이삼일만 지나면 일부 학생들은 여행을 다녀온 듯이 돌아올 것이다. 방학이 되어도 학기 중이나 별반 다름없이 보내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이다. 계절학기 수업, 과별 특강 등 취업이라는 목표를 향해 스펙을 조금이라도 더 쌓으려고 그들은 방학이지만 여유를 부릴 엄두를 못 내지 싶다.

오늘은 곧 간호사가 될 두 학생을 만났다.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이미 모병원에 취직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그녀들의 노고를 잘 알고 있는 터라 함께 기뻐하며 축하를 해주었다. 학과 강의실과 생활관, 아르바이트 장소를 꿈을 이루기 위해 오가던 그녀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열심히 알차게 대학생활을 한 수확의 흔적이 아닐까.

지나온 나의 길을 돌아보면 각양각색의 발자국들이 새겨져 있다. 새로운 한 해 나는 어떤 발자국을 만들어 갈까. 여유를 가지고 학생들과 좀 더 따뜻한 만남의 시간을 만들어 가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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