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선비정신
한국의 선비정신
  • 안승현<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 승인 2018.01.2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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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 안승현

서예를 배운 적도 없는 사람이 먹을 들었다. 연적에 물을 담아 벼루에 붓고 먹을 갈고,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풀을 먹인 붓을 벼루 위에서 풀었다. 붓을 세워 한지 위에 `薄己厚人(박기후인)', 修己治人(수기치인), 문방사우 등 이런저런 글을 쓰다 결국 선비정신이라 적는다. 글도 쓸 줄 모르면서 주변에 있는 것들을 모두 모아다 폼이란 폼을 다 잡는다.

선비상 옆에 연상, 연상 안에 벼루가 있고, 붓걸이에 몇 자루의 붓이 있다. 주변은 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만하면 정말 멋진 책방인데, 옛 공간으로 치면 사랑방이라 해야 할까?

2017, 2018년은 `한·영 상호교류의 해'로 올 2018년은 영국에서 `한국의 해'로서 특별히 한국공예분야를 집중 조명하며, 5월 초에 개최되는 런던크라프트위크 기간에 맞추어 주영한국문화원에서 전시와 워크숍을 진행하게 된다.

`런던크라프트위크(영국공예주간)'는 영국에서 럭셔리맨이라 불리는 `가이살터'가 공예에 주목하며 2014년에 시작한 행사이다. 가이살터는 영국 전통 럭셔리 업체 `아스프리(Asprey)',왕관 세공업체 `가라드(Garrard)',삼페인업체`로랑 페리에(Laurent-Perrier)'등의 CEO를 지냈다. 공예를 통해 명품을 넘어서는 창의성과 장인정신을 보여주고 향후 미래의 문화를 리더하기 위한 행사이다.

이 행사를 시작한 가이살터가 공예를 국제적인 행사로 만들어낸 나라를 찾았고, 그 나라의 자그마한 도시 청주에 참여를 제안했다.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영국 최고의 국립미술관 내셔널갤러리, 영국 버킹엄궁, 트라팔가광장에 가장 인접해 있는 주영 한국문화원에서 한국의 공예를 선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 행사에서 보여줄 우리의 공예는 `선비정신'이다. 영국 측에서 한국의 `문방사우'에 대해 진행해 주었으면 하는 요청이 있었던 터이고. 4차 산업혁명, 디지털화에 따른 속도전쟁, 경쟁사회에서 힘든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사람다움에 대한 사유, 치유와 삶의 지혜를 일깨워줄 무언가를 요구한 것이다. 그것이 곧 한국의 선비정신인 것이다.

풍부한 학식과 덕성을 끊임없이 키우며 인격적 완성을 위해 수양하고, 자기 신념을 지조 있게 지키고, 개인의 이익보다는 대의를 위해 임금에게 충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한 태도, 인정과 의리,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이룬 품격을 갖추고자 노력했던 사람들, 그러한 정신을 상징화할 수 있었던, 그들이 사용했던 물건들. 그것조차 사치스럽게 생각해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어진 사물들, 그것이 어쩌면 공예의 본질적 미를 가장 잘 표현해 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선비의 정신을 오브제적 공예품으로만 모든 것을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작품 한 작품이 만들어지고 사용하는 사람에 의해 가치가 부여되며, 사용하는 사람들과의 공감대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스토리들이 있다. 지역에는 그러한 작품을 평생 만들어 온 장인들이 있기에 청주는 영국이라는 나라에서 세계의 많은 사람에게 한국의 선비정신을 고스란히 보여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것의 변화를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발현하고(紙), 세밀하면서도 강렬한 힘을 발산하는 변화의 본성을 가졌으며(筆), 하찮은 그을음에서 만들어져 제 몸을 갈아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내고(墨), 사용하는 사람의 곁에서 오래 함께 지켜오며 자신을 낮춰 일생 모든 것을 받아낸(硯) 것들과 함께 벗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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