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아이들을 꿈꾸며
행복한 아이들을 꿈꾸며
  • 임성재<칼럼니스트>
  • 승인 2018.01.18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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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 임성재

며칠 동안 계속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얗다. 발이 푹푹 빠질 만큼 쌓인 마당의 눈을 치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눈이 녹을 때까지 아무 일없이 눈에 파묻혀 지내고 싶었으나 이미 약속된 청소년 캠프를 위해 눈을 치워야 했다. 큰길은 동네 사람들과 함께 치웠고, 집으로 들어오는 마당은 한 사람이 걸을 정도의 넓이로 눈길을 냈다. 쌓인 눈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딴 세상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도심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설국(雪國)에 들어온 아이들은 표정부터 달라졌다. 요즘 중학교 2학년 청소년들을 전혀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캠프 날이 다가올수록 부담감이 커져 왔던 터였다. 더욱이 `김정은이 대한민국 중학교 2학년들이 무서워 전쟁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우스개소리도 들었던 적이 있는지라 그 무게감은 더했다. 그런데 눈으로 덮인 앞산과 마당을 보고 탄성을 지르며 당장에라도 눈 덮인 마당으로 달려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맑은 눈빛을 바라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한 사물에 대해 같이 공감한다는 것만으로도 친밀도가 높아지는 경험을 한 것이다.

1박2일로 진행된 캠프의 주제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었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으레 있을 법한 자기소개 방식을 살짝 바꾸어 보았다. 낯선 여학생과 남학생을 한 조로 묶어 서로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묻고 알아가는 시간을 준 뒤 인터뷰 글을 작성하여 상대를 소개하는 방식이었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스스럼없이 서로를 취재하여 상대방을 소개해주고, 자신의 의견을 거리낌 없이 발표하는 모습에서 요즘 청소년들의 당당함을 본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상대방의 장점과 꿈 그리고 고민까지도 공유하며 함께 이야기 나누는 아이들의 진지한 모습이 참으로 대견해 보였다.

그러나 조금씩 더 깊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해맑음 뒤에 숨겨진 아픔과 슬픔을 만나게 되었다. 캠프에 참가한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현재가 매우 외롭고 위태롭고 긴장되는 시간들이라고 말했다.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한한 경쟁 속으로 내몰리고 숨 돌릴 틈도 없이 돌아가는 쳇바퀴 속에서 힘들어 하고 있는 아이들의 절절한 고백을 듣고 있자니 가슴 가득 미안함이 밀려왔다. 눈물을 머금은 아이들의 이야기가 더욱 깊어질수록 그 원인의 시작은 바로 입시만을 위한 우리 교육에 있다는 확신을 지우기 힘들었다.

충북도교육청이 시행하는 행복씨앗학교나 행복교육지구사업은 모두 아이들의 행복을 목표로 하는 교육정책이다. 입시를 위한 도구쯤으로 여겨온 학교를 인성을 가르치고 아이들을 바로 키우는 명실상부한 학교로 바꿔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로 만들자는 정책이다. 그런데도 행복씨앗학교나 행복교육지구사업 정책은 충북도의회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발목 잡히는 일이 허다하다. 충북에선 아직도 교육을 정치적 이해득실로 저울질하려는 풍토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엘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인 `부의 미래'에서 `현재의 학교는 여전히 산업혁명 당시의 공장처럼 학생들을 공산품처럼 교육하고 있으며, 세상은 시속 160킬로미터를 요구하며 달리고 있으나 학교는 여전히 15킬로미터로 가르치고 있다'고 역설한 바가 있다. 아이들은 다양한 것을 꿈꾸고 세상은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의 공교육은 구시대적 목표에 매달려 줄 세우기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1박2일 동안 핸드폰을 끈 채 낯선 친구들을 만나 함께 이야기하고, 플라톤을 읽으며 토론하고, 마당에서 맨손으로 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들며 뛰어놀았던 캠프를 마치고 돌아가는 아이들의 발걸음에 아쉬움이 가득 묻어 있었다. 1박2일의 짧고 특별한 체험이 가져다주는 행복이 아니라 초, 중, 고등학교 12년 동안의 학교생활을 이렇게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바로 행복씨앗학교에서 해야 할 일이다.

첫발을 내디딘 충북교육청의 행복씨앗학교와 행복교육지구 사업은 도민 모두가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관심을 갖고 지켜나가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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