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만남
참된 만남
  • 김희숙<수필가·원봉초병설유치원교사>
  • 승인 2018.01.02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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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희숙

부버의 만남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와 그것의 만남이 아닌 나와 너의 만남. 인격적인 관계로 서로를 믿어주는 진실한 만남이야말로 사람을 한 단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보어 뱀 그림을 통한 어린왕자와 조종사의 만남처럼, 사람 간의 관계는 때에 따라서는 사막도 비옥한 옥토로 만들 수 있고 풍요로 가득한 도시도 때로는 고립된 사막이 된다. 그동안 아들은 도시 사막 속에서 혼자 모랫길을 헤맸는지도 모르겠다. 그 외로운 사막에서 손을 내밀어 주는 조종사가 되어 주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함으로 남는다.

며칠 전 민규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들이 전시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것을 축하한다는 해맑은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이번 전시회에서 우수상과 함께 상금도 받았다는데 모르냐고 묻는 민규 엄마의 말에 가슴에서 철커덕 소리가 났다. 혹시 잘못 들은 건 아닐까 귀를 쫑긋 세웠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장학금도 받았다는데요.”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우리 아들이 아닐 거라는 말에 그녀는 덧붙였다. 과에 한 명 받는 장학금이라고. 전화를 끊고 거실을 미친년처럼 중얼거리며 서성였다. 그리고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은 아들에게 전화를 넣었다. 어디냐고 묻자 학교란다. 밤 9시가 넘었는데 무슨 학교냐고 하자 과제를 해야 해서 아직 학교라 한다. 혹시 잘못된 정보일지 몰라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들 장학금 받았다며? 네 전시회에서 우수상도 탔다며?”그러자 아들이 그렇다고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왜 엄마한테 말을 안했느냐고 하자 그냥이라고 답을 했다. 사실이었다. 나는 친정 엄마에게 전화하고 동생에게 전화하고 모든 가족에게 전화를 넣었다.

한 번도 성취의 경험이 없던 아이였다.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늘 주눅이 들어 있고 집에서는 말도 잘 안했다. 그 모습이 손가락에 박힌 가시처럼 날 아프게 했다. 군대에 다녀온 후로는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공장에 가겠다고 하여 내 애간장을 녹이곤 했다. 아이를 억지로 복학시키면서도 혹시나 학교에 가지 않으면 어쩌나 홀로 조바심을 내었다. 그런 아이가 장학금이라니, 천지가 개벽하는 것만큼이나 큰 사건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다들 놀라며 한마디씩을 한다. “그런 일이? 무슨 일이야? 정말이야? 세상에 이런 일이?”가족들에게 소식을 알리고 나자 그제야 실감이 났다. 아들에게 문자를 넣었다. 어떻게 네가 이렇게 훌륭한 일을 했냐고 네가 너무 자랑스럽다고. 밤늦게 들어온 아들에게 다시 축하한다고 하자 쑥스러운 듯 내 눈을 피하며 방으로 스며들었다. 모두가 L교수님 덕분이다. 아이가 복학하지 않겠다고 할 때 두 시간을 넘게 상담을 해주시고, 밥을 사주시면서 아이의 미래에 대해 염려를 해주셨다. 그리고 바쁜 시간을 쪼개어 기꺼이 인생의 비전을 제시해 주셨다. 그런 참 스승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창밖을 본다. 눈발이 날린다. 소리 없이 흩날리는 수많은 눈송이를 보며 수많았던 만남을 생각해 본다. 모든 참된 삶은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을 떠올리며. 결코 나의 힘이 아니라 너로 인해 내가 되는 것이라는 부버의 철학이 눈발처럼 머릿속에 흩날린다. 어린왕자와 장미의 만남, 그 길들여짐의 관계처럼 진실한 만남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L교수님께 감사한 마음을 지울 길이 없다. 나도 그처럼 참 만남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사람이 되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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