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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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은아<증평도서관 사서>
  • 승인 2017.11.2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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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 하은아

얼마 전 재미있는 꿈을 꿨다. 꿈속에서 아이의 어린이집 운동회 또는 회사 체육대회였나 보다. 나는 어이없게도 이어달리기 마지막 선수였다. 헐렁한 캔버스화를 신은 나는 신발을 벗고 뛰어야 할지 아니면 운동화 끈을 꽉 매고 뛰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내 앞 주자들은 정말이지 너무 못 뛰었다. 차이가 운동장 반 바퀴 정도였다. 나는 헐렁한 운동화를 보며 계속 마음을 재고 있었다. 신발을 벗고 뛰면 내가 따라잡을 수 있을지 아니면 설렁설렁 뛸지 그렇게 고민만 하다가 일어났다. 나는 배턴도 이어받지 못하고 깨버린 것이다. 잠이 깬 후 그런 꿈이 우습기도 해서 실없는 웃음만 나왔다.

30개월이 조금 넘은 딸은 곧잘 책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한다. 어두워지고 잘 시간이 가까이 오면 으레 책을 챙긴다. 딸이 가져온 `달려(이혜리 지음·보림)'를 읽고 있자니 그 꿈이 생각이나 한참 웃었다. 어리둥절한 딸 표정을 보고 나는 더 웃어 버렸다.

책 속에 있는 동물들은 정말 무료해 보인다. 팔을 괴고 누운 호랑이, 벌러덩 누워버린 치타, 꼬리를 축 내리고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공작, 갈기 속에 얼굴을 묻고 엉덩이를 치켜든 사자. 연필로 그려진 이 동물 친구들의 심심함이 나에게까지 전염된 듯 몸이 찌뿌드드하고 좀이 쑤신다. 하지만 무언가 재미난 일이 없다. 익살스런 공룡의 `달려!'한 마디에 숲 속 친구들은 온 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한다. 사자가 달리니 공작도 달리고, 치타도 달리고 눈에 안 보일 정도로 빠르게 호랑이도 달린다. 그냥 달리는 것뿐인데 너무 즐겁다. 동물 친구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모두 신이 난 듯하다. 그렇게 달리다가 서로 부딪혀 넘어진다. `뭐 어때? 다시 달리면 되지!'라는 표정으로 누군가의 `달려!'라는 말이 들리기 무섭게 또 달린다. 힘껏 달린 동물들은 숨을 몰아쉬지만 누구보다 행복한 모습이다.

나는 달리기 하나로 이렇게 재미있게 놀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른이 된 모양이다. 마냥 추억처럼 이 이야기를 읽어버리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러다가도 거실 매트 위를 쉴 새 없이 달리고 또 달리는 딸, “엄마 잡으러 간다”라며 장난치면서 내 뒤를 쫓아 뛰는 딸이 생각이 났다. 행복과 즐거움이라는 것이 멀리 있지 않음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고민을 잊고 생각도 안 하고 놀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놓치고 살아가는 것 같아 아쉬움이 든다. 우리는 그래서 아이의 운동회에서 달리기하는 것을 보며 그렇게 재미있어하는 걸까? 가끔 미친 듯이 웃고 싶거나 아무 생각 없이 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잊어버린 듯하다.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찾아 또 고민을 하고 검색을 한다. 어릴 적엔 달리기 하나에도 즐겁게 놀았는데 말이다.

어른이 될수록 놀이에도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뭔가 눈에 보이는 그럴듯한 놀이를 해야만 할 것 같다. 그런데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누가 누가 더 오래 자나, 누가 누가 더 오래 아무것도 안 하나'이런 놀이를 상상해 본다. 상상만으로도 즐거워진다. 달리기 하나로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즐거운 놀이가 생각이 난다. 실천을 못 해도 좋다. 생각만으로도 이렇게 즐겁고 행복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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