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소명은
이 시대의 소명은
  • 박숙희<청주시문화관광해설사·아동문학가>
  • 승인 2017.11.19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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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 박숙희

정유년 11월, 마음의 문을 열고 더 자세히 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를, 가진 것 없이 줄 수 있는 삶으로 반추하려는 「직지」상권 쉰두 번째 이야기는 양수 좌주(良遂 座主) 스님의 말씀이다.

전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부산 화엄사 주지 각성 스님의 `직지'번역 및 강해(1998년) 등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양수 좌주가 처음 마곡에게 가서 참배를 했더니 마곡이 양수가 오는 것을 보고 문득 호미를 가지고 가서 풀을 맸다. 양수가 풀매는 곳에 갔으나 마곡은 자못 돌아보지도 않고 문득 방장으로 돌아가서 문을 닫아 버렸다.

다음날 양수가 다시 갔는데 마곡이 또 문을 닫거늘 양수가 이에 문을 두드리니 마곡이 묻기를 “누구냐?”말하기를 “양수입니다.”겨우 자기 이름을 말할 때 홀연히 크게 깨달아 말하기를 “화상은 양수를 속이지 마옵소서.”

양수가 만약에 여기 와서 화상을 예배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오늘날의 일이 있겠는지요? 경론에 빠져서 일생을 헛되게 지낼 뻔했도다.

좌주(座主)는 경론을 강의하는 스님이란다. 양수 스님이 마곡 보철 화상의 제자가 되었다.

우리나라 신라의 스님도 마곡 보철 화상에게서 법을 받아 온 분이 있었단다. 온종일 대화를 못하고 마곡 보철이 못 본 척하고 풀 매러 가니까 풀매는 곳까지 갔는데도 자기 방으로 가서 문을 닫아버리고 또 그 다음날도 문을 닫아버리는 그 순간에 양수가 공부가 된 것이란다.

마음속으로 `왜 그런가?'하고 화두가 된 것이다. 그러다가 “누구냐?”하는 물음에 “양수이다.”하고 자기 이름을 말하는 그 순간에 크게 깨달았다는 것이겠다.

《삼국유사》에 나온다는 내용을 옮겨 본다.

왕의 사자가 용구에 들어가서 그 경을 가지고 나왔는데 대안 대사가 가지고 나온 경전의 헝클어진 순서를 맞추게 하고 원효 대사가 《금강삼매경》을 강론하면 왕후의 병이 나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원효 대사가 《금강삼매경론》을 지어서 하셨다는 법문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서까래 백 개를 취할 때에는/ 비록 법회에 참석을 못했으나
오늘날 대들보 상량을 올리는 곳에는/ 오직 나만 홀로 담당했도다.


원효 대사가 자랑하는 이 말을 듣고 백고좌에 참석했던 여러 고승들이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워서 얼굴도 들지 못하였다는 말이 《삼국유사》에 나온다는 것이다.

지금의 눈으로 과거를 재단하거나 이념이나 정파적 이해관계로 시대를 규정하면 역사와 역사적 인물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모든 시대에는 그 시대의 소명이 있다.

빈곤과 좌절 패배의식에서 탈출하여 산업화의 결과로 탄탄한 중상층을 형성했던 시대는 민주화로 이어질 수 있었던 열망이 컸었기에 가능했지 않았는지.

정권마다 과거를 부정하고 파헤치고 매도해 이제 현대사 위인 중에 남아날 사람이 없는 지경이 됐다. 이 시대의 소명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이런 자해 행위를 때마다 반복해야 하는지 곰곰이 고민해야 하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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