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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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은아<증평도서관 사서>
  • 승인 2017.10.30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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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 하은아

우리 집 마당에는 늘 강아지가 있었다. 농사짓는 집이니 마당을 지키고 빈집 잘 보고 가끔은 찬밥도 처리해줄 강아지가 필요했다. 그러니 내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기억 속 우리 집 전경에는 강아지가 빠지지 않고 함께하고 있다.

내 기억 속 첫 강아지는 아주 큰 셰퍼드였다. 무서운 외모와는 달리 유난히 꼬리도 잘 흔들고 사람들에겐 짖지 않았던 녀석이었다. 아주 조그만 강아지일 때 와서 정이 담뿍 들었는데 학교 갔다 오니 보이질 않았다. 잘 짖지도 않고 큰 덩치를 엄마는 마뜩찮게 생각하고 계셨고, 마침 동네에 방문한 개장수에게 보내버린 것이다.

그다음 강아지부터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늘 강아지는 있었고 흰둥이였다가, 누렁이였다가, 발바리였다가 작고 앙증맞은 아이들이 잠시 머물다 갔다. 그 강아지들 이름도 언제나 메리였다. 동네 모든 고양이 이름이 나비인 것처럼.

작가 안녕달의 그림책 `메리'(안녕달 글·그림, 사계절, 2017)도 옛날 시골집 풍경을 그대로 담고 있다. 녹색 철 대문과 낮은 담벼락, 마당 안에는 환하게 웃는 할머니와 강아지가 한 마리 있다. 내가 읽을 책 사려고 접속한 인터넷 서점에서 작가의 신작 이벤트를 보고 딸에게 읽어준다는 핑계로 구입한 책이다.

예쁘기만 한 그림책이 아니라 더 정겹다. 투박한 그림 속에 할머니와 시골집은 이번 주말에도 갔다온 친정집 같다. 강아지 한 마리 키우자고 할아버지는 말씀하시고 아빠는 옆 동네까지 가서 강아지 한 마리 데려오고 아이들은 신나게 강아지 집을 만든다. 강아지가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아빠와 아이들은 분가하고 집에는 메리와 메리의 새끼 세 마리만 남는다. 옆 동네에서 놀러 온 정자 할매에게 한 마리, 배달 온 슈퍼 집 할아버지에게 한 마리, 손녀딸을 키우게 된 춘자 할매에게 한 마리. 강아지들은 새 식구를 만난다. 집에는 다시 메리와 할머니만 남았다. 잔뜩 남은 추석 음식으로 저녁을 먹던 할머니는 저녁상을 번쩍 들고 메리 앞으로 가져와 함께 먹는다. 매일 이렇게 좋은 음식을 찾으면 안 된다는 당부와 함께.

그림책 속에 갖가지 이별들이 그려져 있다. 강생이를 키우자던 할아버지의 죽음은 검은 장례복을 입은 그림으로, 어느새 그림책 속에서 사라진 아이들과 아빠 엄마, 차례차례 새 식구를 찾는 강아지까지 여러 종류의 이별들이 있다. 그 이별들이 짠하고 슬퍼 책을 읽을 때마다 속이 쓰리다. 책이 재미있는지 딸은 곧잘 이 책을 골라와 읽어달라고 한다. 강아지가 있다고도 하고, 똥이 있다고도 하고, 할머니가 있다며 조잘거린다. 그 옆에서 열심히 책을 읽어주다가도 엄마가 생각이 나 멈칫한다.

자꾸 메리 한 마리와 엄마만 남아 있을까 봐 겁이 난다. 혼자 상을 차려 밥을 먹는 할머니의 모습이 엄마 같다. 나는 어떠한 이별도 준비되지 않았는데 이 그림책 한 권이 생각해보라며 나에게 이야기하는 듯하다.

친정 집 마당에도 메리 한 마리와 부모님이 사신다. 대문을 빼꼼 열고 들어가면 메리가 보인다. 시크하고 도도한 것이 매력인 우리 집 메리는 내가 가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아빠가 사료 한 바가지라도 들고 가야 좋다고 꼬리를 살랑댄다. 그 옆에선 엄마는 개가 커서 똥도 많이 싸고 먹기도 많이 먹는데 짖지도 않는다며 투덜거리신다. 이 풍경이 그림책 표지처럼 영원하기를 마음속에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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