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
막말
  • 백인혁<원불교 충북교구장>
  • 승인 2017.10.23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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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숲
▲ 백인혁

쓸쓸함이 더하는 가을날입니다. 창밖의 나뭇잎이 시간이 흐를수록 곱게 변하는 모습을 보며 지난봄 새움 돋아나던 그때의 감격을 지우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겹쳐집니다.

몇 해 전 곁을 떠나신 아버님이 어느 해 가을 푸른 하늘을 지긋이 바라보시다 내년 가을을 또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자꾸 내려앉는 눈꺼풀에 힘을 주시던 모습이 아른거립니다. 이런 생각에 잠겨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끝난 것이 끝난 것이 아니다'는 말을 하며 다가서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헤어진 후에도 스님들이 선방에서 들고 있다는 화두처럼 `끝난 것이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이런 말에 사로잡혀 있을 때 문득 한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어린 시절 다니던 시골 초등학교는 가을이 되면 날을 잡아 겨울에 난로를 피울 나무를 마련하기 위해 뒷산에 가서 죽은 나뭇가지를 주워 오도록 했습니다. 뒷산에 나무를 하러 가는 우리는 신이 나서 재잘거리며 산을 오르는데 저만큼에서 커다란 나무 등걸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우리는 서로 그것을 먼저 차지하려고 달려가 그 나무를 붙잡고 서로 자기가 먼저라고 다투었습니다. 그러자 뒤따르시던 담임 선생님이 친구들끼리 싸우면 되느냐고 나무라시며 “너희가 다투며 `다시는 너하고 안 놀아'라고 하던데 누가 그런 말을 했느냐?”라고 다그치셨습니다.

덧붙여 해 주신 말씀이 세상에 나쁜 말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막말은 가장 나쁜 말이라 하시며 특히 친구끼리는 막말, 막보기, 막가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가 “그러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질문을 하자 선생님은 “말을 할 때는 여지가 있는 말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슨 뜻인지 몰라서 머리를 갸우뚱하는 모습을 보이자 친구들이 잘되라는 말, 듣기 좋은 말을 하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막말'이란 뜻을 잘 몰라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그래도 속으로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어.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나갔는데 막상 집에 와서 늘 같이 놀던 친구가 맘에 안 든 행동을 하자 너무도 쉽게 “너하고 다시는 안 놀아”라는 말을 하고 있더라고요. 아차! 싶었습니다. 나도 막말을 자주 하고 살고 있구나! 생각하니 그때야 왠지 선생님께 미안한 생각이 들고 그때 선생님이 나 들으라고 하신 말씀이었는데 바보같이 나는 다른 사람 들으라고 하신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니 부끄러운 생각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습니다.

막말이란 다시는 안 볼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하는 말입니다. 여지가 있는 말이란 다음에 다시 볼 때 무슨 말이나 부탁을 할 수도 있게, 또 그만큼이라도 들어준 것이 고맙다고 뒤돌아서면서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말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살면서 다시는 안 볼 것 같은 사람도 이야기하다 보면 몇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요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꼭 그 상황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그런 거리에서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 무슨 상황에서든 서로 함께 가는 삶, 함께하는 삶으로 이 세상의 어려움을 헤쳐나갈 때 어려운 상황에서 쉽게 도움이나 구원을 청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혼자만 살려고 하면 결국 죽게 되고, 같이 살려고 하면 살길이 열린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처럼 우리도 언제나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한다면 서로 존경하고 공경하며 상대방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말이나 행동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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