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단상
죽음에 대한 단상
  • 임성재<칼럼니스트>
  • 승인 2017.10.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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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 임성재

긴 추석연휴를 슬픔으로 보냈다. 지기지우(知己之友)의 딸이 세상을 떠났다. 추석 다음날 들려온 그 아이의 부음은 큰 충격이었다. 친한 친구들의 자식들 가운데 제일 먼저 태어나 귀여움을 독차지 했던 딸과 같은 아이가 37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것이다. 명절 연휴의 혼잡한 고속도로 차량사이를 뚫고 빈소로 향하는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마냥 어린애만 같았던 그 아이가 영정사진 속에서 미소 짓고 있었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친구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문상을 많이 다녀보았지만 영정사진 앞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친구의 등을 감싼 내 손 위에 그의 슬픔이 전해졌다. 그러나 그 슬픔의 깊이는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안타깝고 어처구니없는 죽음이라 친구부부를 위로하기도 힘들었다. 문상객들도 모두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장례절차는 산자의 슬픔을 딛고 무자비하게 진행됐다. 화장하고 납골당에 안치하는 절차가 끝나고 모두가 헤어질 때 친구부부만 남겨놓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친척과 친지들이 모두 떠난 자리에 덩그러니 혼자 남았을 때 밀려오던 슬픔과 허탈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었다. 하물며 새파랗게 젊은 자식을 떠나보낸 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저며 왔다.

돌아오는 내내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닥치는 일이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너무도 잘 안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죽음은 나와 무관한 먼 남의 일인 것처럼 여기며 살아간다.

내가 죽음을 처음 마주한 것은 대학 1학년 때였다. 오래 병석에 누워계시던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처음 본 죽음 앞에서 나는 무서움에 떨어야했다. 할머니는 중풍으로 누워계시면서도 손자들을 다정하게 대해 주셨고, 종종 할머니의 병수발을 들면서 할머니와 친하게 지냈는데도 돌아가신 할머니의 얼굴은 너무나 무서워 쳐다볼 수 없었다. 그 다음에 죽음을 마주한건 군에 입대해서다. 훈련 중 한 병사가 사망했는데 위생병이었던 나는 그 장례절차를 직접 진행해야했다. 난생처음으로 시신에 손을 댔을 때 비수처럼 심장에 꽂혀온 그 싸늘한 냉기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시신을 화장하고 유골을 영현소대에 안치할 때까지의 전 과정을 지켜보면서 죽음의 허망함과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죽음이 나에게도 닥칠 일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4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비로소 죽음이 나와도 무관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이를 먹은 탓이었는지, 어쨌든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나의 죽음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 가 젊은 날의 화두였다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이것이 요즘 나의 화두다. 그 사람이 잘 살았느냐, 행복한 삶을 살았느냐의 평가는 그 사람이 맞이한 죽음을 보고 평가하라는 고대 철학자들의 음성이 또렷이 되살아난다. 죽음은 우리가 피하고 막아야하는 삶의 방해자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잘 마무리하도록 도와주는 지표 같은 것이다.

친구 딸을 먼 세상으로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주마등처럼 스쳐갔던 죽음에 대한 회상과 생각이었다. 죽음은 피할 대상이 아니다. 피할 수도 없는 길이다. 그것은 아마 삶의 끝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삶일 것이다.

죽음을 삶의 연장선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것은 오늘을 가치 있게 살아가야만 하는 의무의 당위이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 앞에서 떳떳한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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