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선시(禪詩)
다산의 선시(禪詩)
  • 정세근<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7.10.1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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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충북대 철학과 교수>

오늘은 좀 어려워지자. 어렵다기보다 전문적이 되어보자.

수준에 대한 이야기다. 오랜만에 다산 정약용의 수준에 다가가 보자.

다산이 조선의 백성을 위한 여러 저작을 지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목민심서'나 `경세유표'그리고 `흠흠신서'가 그러하다. 1표2서로 약칭될 정도로 유명하다. `흠흠신서'가 형법에 관한 것이니 관심 범위도 참 넓다. 그러나 오늘날로 치면 `사법개혁'의 문제니 참으로 오래된 문제다.

뿐만 인가. 우리 같은 서생에게는 이런 사회참여적인 저술보다도 `논어고금주'와 같은 경학 관련저서가 눈에 띈다.

이런 저술이 현실정치에 관련된 것만큼 많으니 학문이 깊고도 넓음을 느낀다. 아니, 넓어야 깊어지고, 깊어야 넓어짐을 나는 다산을 통해 배운다.

깊이만 강조하는 오늘 우리의 학문이 넓어지지 못하는 것은, 제대로 깊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제대로 넓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만의 깊이를 못 찾는다.

심도 있는 것은 통쾌하다. 통쾌하면 광활해진다.

다산이 쓴 선시를 보았다. 다산연구소 박석무 이사장의 글을 통해서인데, 그도 정민 교수의 `다산 증언첩'(2017)이라는 얼마 전 출간된 책을 통해서였다.

거기에는 인허 만순, 침교 법훈, 초의 의순에 준말이 있었다.

다산은 그들을 평가하고 방침을 내렸다. 쉽게 가, 나, 다로 정리해보자.

가) 인허 만순:진로쇄탈(塵勞灑脫)
나) 최의 의순:천답실지(踐蹋實地)
다) 침교 법훈:초투오란(超透悟闌)

풀면 이렇다.

가)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무척 애쓰는데 깨끗이 씻고 벗어나라.
나) 진짜 땅을 밟고 다녀라.
다) 깨달음의 담을 뛰어넘어라.

가)는 현실에 관여하느라 공부를 못하니 초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나 하는 말이 추상적이라 제발 현실로 돌아오라는 것이고, 다)는 좀 알 것 같지만 꽉 막혀 있는 성격 때문에 좀처럼 뛰어넘지 못함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되지요?'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절집에 맞게 선문답이다.

가) 가을 구름 속 한 조각 달(秋雲一片月)
나) 서울 하늘 가득 날리는 꽃(飛花滿帝城)
다) 새 그림자 추운 못을 건너다(鳥影渡寒塘)

이 오언의 시구를 해석하면 이렇다.

가) 세속을 벗어나 높은 가을 하늘 구름 속에 빛나는 청량한 달이 될 수 있도록 하라.
현실을 탐하지 말고 훌쩍 떠나 공부하라.

나) 이 세상에 이미 많은 사람이 꽃처럼 피어나고 있는데, 이들을 보지 않으면서 무슨 부처가 된다고. 현실에도 진리가 떠다닌다.

다) 어렵겠지만 추운 물에 제대로 빠져봐라. 어영부영하다가는 깨우치지 못한다.
너무 현실적이고,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고, 그 둘 사이에서 헤매는 것을 지적한 이야기다.

다산의 시를 보다가 나는 완전히 새됐다. 새됐다는 말을 아는지?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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