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문화와 양반 인공지능 시대 바람직한 인간상
충북 문화와 양반 인공지능 시대 바람직한 인간상
  • 김명철<청주 서경중 교감>
  • 승인 2017.10.1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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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역사기행
▲ 김명철

충북의 문화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 충북의 자연과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을 제대로 알고,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할 것이다. 충북은 대체로 한강과 금강이라는 큰 강 유역권과 태백산맥에서 나누어진 소백산맥에 있는 지리적 환경적인 요인이 중요한 구실을 한다. 그리고 삼국시대 이후 교통의 요지로서 숱한 외적의 침략에 대한 항전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공통점으로 하여 형성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형성된 충북인의 정서를 흔히 `청풍명월(淸風明月)'로 문화의 내용을 `양반 문화'로 정의를 내려왔다. 충청도 사람의 기질이 맑은 바람같이 부드럽고 밝은 달과 같이 쾌활하다는 뜻으로 `청풍명월'이라 했다. 이 말은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고 민심이 좋고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 복합적인 의미로 사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양반(兩班)이라는 명칭은 조선에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관료들과 관료가 될 수 있는 잠재적 자격을 가진 가문을 말한다.

본래 임금이 정무를 볼 때 남쪽을 보고 앉는데, 임금을 기준으로 왼편인 동쪽에 문반(文班)이, 오른편인 서쪽에 무반(武班)이 늘어섰는데, 이들 두 개의 반(班)이라는 의미에서 양반이라 하였다. 그러나 양반 관료체제가 점차 정비되면서 양반이라는 용어는 문·무반의 관료뿐만 아니라 음직을 통해 관직을 얻을 수 있는 가문의 구성원이나 과거를 준비하는 예비 관료들인 유생들까지 통틀어 양반이라는 용어로 발전했다.

충북은 서울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서울과 동질적인 생활 문화를 누릴 수 있고, 또 서울 양반들의 주요 낙향지이기도 하였다. 즉 그들이 퇴직했을 때 주로 기후 좋고 인심 좋은 충청도 지역으로 이주해 농토와 주택을 마련하여 대대로 거주하였고, 그 후손들 역시 조상의 음덕을 입어 양반 행세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조선조 문과 급제자의 52%가 충청도 인물이라는 통계가 말해주듯이 선비들의 밀집지이기도 하였다.

여기서 충청도 문화의 특질로 언급되는 양반을 `충북의 유교 문화'에서 제시하고 있는 내용으로 정리하면 세 가지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로는 한양의 양반들이 벼슬에서 떠나 가장 많이 낙향한 곳이 호서지방이었다. 이에 따라 이 지방에는 이른바 양반이 많이 살게 되었고, 충청도 양반이란 말도 생겼다.

둘째로는 충청도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한 기호학파의 주기론적인 성리학체계 및 관련 인물이 조선후기를 이끌면서 충청도가 조선 유교 문화의 본향이며 양반들의 지역으로 인식되었다는 점이다.

셋째로는 낙향한 사대부와 그 가족들이 품위를 유지하고 이른바 행세를 하기 위해 언행을 백성과 달리한 느리고 사려 깊은 말, 신중한 행동이 관습화되면서 체면, 진중함, 여유, 올곧음, 점잖음 등의 기질이 생겨났고 이것을 `충청도 양반'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충청인의 양반적 기질은 다소 보수적이고 소극적 온건함을 뜻하고 있어서 진취성이 부족하고, 변화를 외면하는 부정적 요인으로 지적됐다. 그러나 충청문화의 특질로서의 `양반다움'의 계승은 자연에의 순응과 조화를 뜻한다. 즉 개성을 인정하는 전체 속의 조화와 공동체 윤리의 승화 등을 의미한다.

불현듯 도래할 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하고, 참다운 인간의 삶을 고민할 시점에서 필요한 덕목이 바로 충청인의 기질 속에 잠재된 인간상이 아닐까!

우리 충북의 아이들에게 충청인의 자긍심과 정체성이 스며드는 교육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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