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정등
안수정등
  • 법원<청주 능인정사 주지 스님>
  • 승인 2017.09.0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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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 법원

불설 비유경 비유담에 안수정등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안수정등의 안수는 당나라의 삼장법사가 인간의 몸이 얼마나 나약하고 위태로운지를 험준한 강 낭떠러지 언덕에 서 있는 나무에 빗대어 비유한 말로 삼장법사 현장의 전기인 삼장법사전에 나오는 글입니다.

정등(井藤)은 인간 존재의 허약함을 우물 속의 등나무에 비유한 정등설화에서 연유하는 말입니다.

한 사람이 드넓은 광야를 가고 있는데 갑자기 사방에서 사나운 불길이 일어났습니다. 불길에 둘러싸여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고 있는데 갑자기 미친 코끼리 한 마리가 나타나 그에게 사납게 달려드는 것입니다. 코끼리를 피하려고 죽을 힘을 다해 도망가는데 언덕 아래 우물이 하나가 있고 그 옆에 등나무가 넝쿨을 우물 안으로 축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급한 김에 등나무 넝쿨을 붙잡고 우물 속으로 코끼리를 피해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우물 밑에는 용이 되려다가 못된 커다란 이무기 세 마리가 마치 그가 내려오기만 하면 잡아먹을 듯이 커다란 입을 떡 벌리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칡넝쿨을 붙잡고 다시 위를 올려다보니 위에는 독사 네 마리가 혀를 날름거리며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려가지도 다시 올라오지도 못하고 있는 그는 점점 칡넝쿨을 붙잡고 있는 팔에 기운이 빠져 갑니다. 설상가상으로 칡넝쿨 윗부분을 흰 쥐와 검은 쥐 한 마리씩이 번갈아 갉아먹고 있습니다. 이제 죽는구나 싶은 진퇴양난의 절체절명 위기순간에 어디선가 달콤한 향내가 나는 액체 한 방울이 얼굴로 떨어집니다. 혀로 핥아 보니 꿀입니다. 나무 위에 지어놓은 벌집에서 꿀이 한 방울씩 흘러내리는 것입니다. 허기도 지고 몹시 갈증이 나던 이 사람은 방금까지 두려웠던 상황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이제 떨어지는 꿀 한 방울을 받아먹으려고 온 정신을 집중합니다.

이 설화는 인간의 삶을 비유합니다.

들판에 번지는 불길은 우리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욕망의 불길을 뜻합니다. 미친 코끼리는 언제라도 부지불식간에 닥칠 수 있는 죽음의 그림자며 무상(無常)을 비유 합니다.

칡넝쿨은 목숨입니다. 이 목숨을 세월을 뜻하는 두 마리의 쥐 즉 해와 낮을 뜻하는 흰 쥐와 달과 밤을 뜻하는 검은 쥐가 잠시도 쉬지 않고 하루하루 갉아먹습니다. 우물 밑바닥은 저승, 황천입니다.

세 마리의 이무기는 탐진치의 삼독을 뜻합니다. 네 마리의 독사는 우리 몸의 구성요소인 지·수·화·풍의 四大를 뜻하며 사람이 죽으면 다시 이 네 원소로 돌아가게 됩니다. 꿀은 재욕, 성욕, 음식욕, 명예욕, 수면욕의 오욕락을 상징합니다.

이 설화는 인간이 탐, 진, 치 즉 탐냄과 성냄, 어리석음이라는 3독에 빠져 무상의 깨달음을 이루지 못한 채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조차 오욕락의 꿀 한 방울에 목숨을 매는 우리네 인간 삶을 비유한 것입니다.

우주 삼라만상의 근원은 곧 마음입니다.

마음이 넓을 때는 온 우주를 품어 안지만 마음이 좁을 때는 바늘 끝 하나 들어갈 틈도 없는 것이 마음입니다.

극락을 만드는 것도 마음이고, 지옥을 만드는 것도 마음입니다. 지옥과 극락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도 합니다. 마음은 과연 무엇일까요? 세상이 시끄러울수록 마음 살림을 잘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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