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가을
새 가을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7.08.2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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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세상의 모든 현상은 생성과 소멸의 때가 있고, 그 가운데 절정의 시기도 포함되어 있다.

절정에 이르면 돌아간다(極則返)는 원리가 예외 없이 적용되는 것이 세상만사이다. 여름도 마찬가지이다. 무더위가 절정에 이를 때 사람들은 여름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제 곧 여름도 갈 것을 이 국면에서 알아채기도 한다. 좀처럼 갈 것 같지 않던 여름이지만, 어느 날 문득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조짐이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당(唐)의 시인 두보(杜甫)는 대시인답게 가을의 조짐을 누구보다도 예리하게 포착한다.

새 가을(新秋)

火雲猶未斂奇峰(화운유미렴기봉):불꽃같은 구름은 지금도 奇峰에 남았는데
欹枕初驚一葉風(의침초경일엽풍):침상에 기대있다 잎 지는 소리에 놀라네
幾處園林蕭瑟裡(기처원림소슬리):숲에서는 소슬한 잎새 소리 들려오는데
誰家砧杵寂寥中(수가침저적요중):누구는 가을 옷 꺼내 다듬이질 하나 보네
蟬聲斷續悲殘月(선성단속비잔월):매미 소리 남은 달빛 아래 구슬프고
螢焰高低照暮空(형염고저조모공):반딧불이 저녁 하늘을 날고 있네
賦就金門期再獻(부취금문기재헌):부 지어 미앙궁에 다시 바치고자 하다가
夜深搔首嘆飛蓬(야심소수탄비봉):깊은 밤 머리 긁으며 떠도는 신세 탄하네



여름이 지나고 나야 가을이 오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무덥고 매미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가을의 현상이 간간히 끼어 나타나는 것이다.

시인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된 여름은 하늘을 떠도는 구름마저 불꽃처럼 보이게 만든다.

보기만 해도 더위가 전해오는 불꽃 구름이 우뚝 솟은 봉우리들 위에서 여름을 호령하고 있는 가운데, 그 눈을 피해 슬며시 들어온 잠입자가 있었으니, 창가에서 문득 들린 낙엽 지는 소리가 그것이다. 침상이 있는 방 바로 옆에 있는 나무이지만, 여름 내내 잎새가 지는 것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전혀 예기치 못하게 잎 지는 소리가 들렸고, 이에 시인은 깜짝 놀랐던 것이다. 나무에서 잎이 떨어지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지만, 그것이 전해 주는 메시지가 놀라웠던 것이다. 침상 옆 나무의 잎이 지는 소리를 듣고 가을이 옴을 직감한 시인의 감각은 급격히 가을 코드로 옮겨 갔다. 숲의 나뭇잎 스치는 소리에서도, 이웃집 다듬이질 하는 소리, 처량한 매미 소리, 밤 하늘을 나는 반딧불의 모습 등은 모두 가을이 오는 조짐들이다.

여름이 한창일 때 가을은 온다. 그런데 가을은 동반자가 있으니, 바로 쓸쓸함이다. 타지를 떠돌며 곤궁하게 사는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면 쓸쓸한 가을의 모습이 자신의 처경과 겹쳐지면서 쓸쓸함은 배가되기 마련이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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