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를 보내고
여름휴가를 보내고
  • 백인혁<원불교 충북교구장>
  • 승인 2017.08.21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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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숲

전국에 흩어져 사는 형제들이 서로 만나고자 해도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아 여름에 휴가를 맞춰 함께 모여 하룻밤을 지내기로 하고 시원한 장소에 팬션 한 채를 빌렸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터라 서로 안부를 물으며 지내온 이야기들을 하느라 여념이 없는 중에 모처럼 만난 조카들은 또 언제 저렇게 자랐는지 몰라볼 만큼 우리키를 한참이나 넘어서 훤칠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드는 생각이 “나도 많이 변했겠지!”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갓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며 힘겨워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고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맡길 곳을 찾아 전전긍긍하며 두런거리던 말 “왜 얘는 낳아가지고 고생을 사서하는지” 지낸 세월을 생각하면 한 편의 드라마 같기도 하고 어찌 살아왔을까 다시 그때로 돌아가 살라 하면 못한다는 말이 먼저 나올 것만 같습니다.

철없던 어린 시절 부모님은 항상 그대로 일 것이라 생각하며 부모님 마음 상할 일만 청개구리처럼 골라 하다 시간이 흘러 버렸는데 어느 날부터 부모님은 편찮아 하시더니 병원을 끼고 사시다 이제는 다 돌아가시고 제 곁에 아니 계시니 한편이 허전하기도 합니다. 아마 지금 제가 어릴 적 모습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뭔가 잘못된 일이겠지요. 지금의 나이에 맞게 머리카락색은 희어지고 얼굴에 주름은 늘어가고 눈꺼풀은 내려앉아 눈을 뜨려면 힘을 주어야 하고 육신은 자꾸 힘이 없어지며 아픈 곳만 늘어 가는데 이런 현상이 당연한 것이련만 왠지 변해가는 저의 모습에 스스로 잘 적응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적응 못 하는 것이 어찌 신체의 변화에서만 이겠습니까? 살아온 인생이 어찌 생각하면 덧없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뿌듯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이 꼭 좋은 것만도 아닙니다. 늘 상 가지고 다니는 휴대폰마저도 진화를 거듭하여 자고 나면 새로운 기종, 새로운 앱 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몰라 어안이 벙벙한 세상이니 말입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 계속 살던 대로 무심하게 사는 것이 좋은지 적극적으로 변화를 수용하며 대응하는 것이 좋은지 판단이 잘 서지는 않지만 적응해 살기가 쉽지 않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을 하다 내린 결론은`늦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세상에 잘 적응하며 살다가자. 그래야 새로운 세상, 살기 좋은 세상을 살다간 보람이 있을 것 아닌가!'하는 생각입니다. 사람들의 사는 방식이 옛날 같지 않다고`아니야 그것은 잘못되었어.'라고 탓하면서 그간의 경험만 주장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방식이 비록 내 맘에 들지는 않아도`새것이어서 그런가보다. 나도 한번 신세대처럼 해보지 뭐'하며 수용하고 배우면서 살아갈 때 좀 더 풍요로운 인생살이가 전개되지 않을까 상상해 보면서 말입니다.

팬션 옆집 마당 구석에서 그늘을 만들어 따가운 햇볕을 막아주는 커다란 감나무에 제법 많은 감이 달려 있었습니다. 아직은 떫은맛이 강하여 먹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제법 감의 형태를 갖추고서 몇몇은 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었습니다. 아마 저 감나무도 긴 겨울을 잘 참아내고 초봄부터 열심히 땅 기운과 따스한 햇볕을 받아 새잎을 피우고 영양을 보충하며 꽃을 피울 꼭 그 시기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을 것입니다. 그러고도 때로는 쏟아지는 장대비와 길고 긴 가뭄도 이기고 찜통 속 같은 무더위를 견뎌냈기에 저 많은 열매를 키워냈을 것입니다. 이 속에 감나무가 살아가는 의미가 있지는 않을까요?

우리 인생도 살라고 한데는 분명 무슨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여태껏 해왔던 것 말고도 지금부터 전개되는 삶 속에 분명 우리 자신도 모르는 또 다른 의미가 숨어 있을 것입니다. 그 의미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그간 가꿔온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자신의 삶을 충실히 엮어 가다 보면 지금까지 살면서 맺었던 어떤 결실보다 더 값진 열매가 준비되어 있을 것이라 확신하면서 휴가에서 돌아온 삶의 현장에 새 바람을 불어 넣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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