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맛과 돈값
돈맛과 돈값
  • 정세근<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7.08.16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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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

돈이 많은 사람이 반드시 행복할까? 아니라는 것이 내 주장이다. 거기에는 `균등성'이라는 개념이 들어가는데, 별게 아니고 `사람마다 행복의 양은 엇비슷하다'는 이야기다.

A라는 사람이 100점 수준의 행복을 느끼는데, B라는 사람은 500의 행복, 심지어 1000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사람마다`고마워하는 마음'의 정도가 달라 행복의 값은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그 양이 다섯 배에서 열 배까지는 뛰지 못한다. 물론 남에게 고마워할수록 행복의 값이 두어 배씩 올라가는 것도 사실이다-어찌 보면 고마워함은 남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이 행복의 균등성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재벌의 딸도 자살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웃는 것을 극단적인 예로 들기도 하지만 좀 더 일반적이 이야기가 필요하다.

여기서 `1만 원이 가져다주는 행복의 값'을 물어보자. 행복이 어렵다면 즐거움이나 도락(道樂)이라고 해도 좋다. 만 원을 썼을 때 느끼는 행복, 여러분은 얼마큼인가?

나야 만 원이면 생맥주가 석 잔, 군만두에 56도짜리 고량주 작은 병 하나, 양말 두 켤레, 꼬마들 손에 쥐여주는 군것질 값 등등이 생각이 날 것이다. 물가가 오르기 전이라면 둘이 먹은 칼국수 값을 내는 기쁨도 포함될 텐데 요즘은 일이천 원씩 올라 함부로 말하기도 뭐하다. 좋다. 달걀값이 아무리 올라도 웬만한 종류라면 한판은 된다. 호사스럽게 커피 한 잔 사도 된다.

그런데 돈이 많은 사람들은 이 `1만 원의 행복'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니까 만 원으로 공유할 수 있는 상호 간의 기쁨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말인데, 다시 말해, 내가 만원을 썼을 때 남이 즐거워하고 고마워하는 감정을 그들은 우리와 엇비슷하게 지니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도 돈맛을 안다. 그러나 서민이 아는 만원의 가치는 쉽게 공유하지 못한다.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웬만하면 1만원의 행복을 안다. 만원이 생겼을 때 그려지는 기쁨이 있다. 그러나 돈이 많은 사람들은 `돈맛'을 알 지언정 `돈값'을 잘 모른다.

동기 가운데 집에 가장 돈이 많다는 녀석이 있었다. 대학생 때 서울의 부촌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술 한 잔 먹자면서 지갑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만 원짜리가 그득했다. 나 돈 많으니 한 잔 먹자는 것인데 지갑은 탐이 났으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냥 술 한 잔 하자면 따라갔을지도 모르는데 지갑의 돈이 나의 술 맛을 떨어지게 했던 것이다. 이후 그 녀석의 행적을 보면서 정말로 그 친구는 돈값을 모른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상당히 힘들고 어려운 부탁을 들어준 사람에게 그 녀석이 고맙다면서 상식선에서 볼 때 정말로 형편없는 보답을 한 것이다.

그 녀석은 1만원이면 둘이 기쁘게 취할 수 있는 것인 줄도 모르고, 1만원이면 귀중한 보답으로 넉넉한 줄 아는 것이었다. 돈이 많다 보니 돈맛은 알아도 돈값은 모르게 된 불쌍한 경우였다.

매 값으로 몇천 만원을 뿌린 재벌총수가 있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몇 대에 천만 원이라면 맞겠느냐고 물어보았는데 나도 그러했지만 다들 해 볼만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몇 대 이상이라든가, 자존심이라든가, 가족이라든가 여러 변수가 따라붙겠지만 매 값치고는 화려한 편이었다. 오늘 나는 비록 몇천만 원은 아니지만 1만원의 가치를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어 행복하다.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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