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색을 만나다
우리 색을 만나다
  • 박명애<수필가>
  • 승인 2017.08.0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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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박명애

평일인데도 인사동은 인파로 붐볐다. 막내가 참여한 동양화 전시도 보고 점심도 함께할 겸 올라온 길, 간간히 비가 뿌렸다.

<법고와 창신>이 주제인 전시는 `우리 채색화의 원류'란 부제가 붙어 있다. `법고'편은 전통기법 그대로 옛 그림을 모사한 작품들로 인물 초상화를 비롯해 고려불화, 청록 산수화, 화조화, 십장생병 문자도 등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반면 `창신'편은 전통 재료와 방식을 그대로 따랐으면서도 현대인의 삶과 욕망을 표현한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은밀하게 숨어 있는 인간의 욕망을 비판하거나 섬세한 감성을 표현한 작품, 화가의 개성을 발랄하게 드러내 주는 작품들이 많았다.

동양화는 수묵과 담채 그리고 진채로 나뉜다. 수묵화가 먹물의 농담, 선과 면으로 명암·입체감·색채감을 나타낸다면 담채는 식물성 염료를 녹여 사용하는데 먹 선을 살려가며 맑게 채색한다.

반면 진채는 광물성 석채를 갈아 아교와 섞어 갠 뒤 유화처럼 진하게 색을 쌓아 올린다. 이번 전시된 그림들은 모두 전통 진채 기법으로 그린 작품이다.

전시장 한편에 진채의 재료가 되는 석채(石彩) 원석을 진열해 놓아 반가웠다.

늘 가루로 된 안료만 볼 수 있어 궁금했는데 원석과 함께 그 안료가 그림 어느 부분에 채색되었는지 보여주니 한결 친근하게 느껴졌다. 오랜 세월 풍화를 겪으며 생성된 광물들이 공작석(孔雀石), 진사(辰砂), 뇌록(綠) 등 생소하면서도 아름다운 이름을 갖고 있어 신비로웠다. 그 돌들을 자연에서 채집하여 분쇄하고 연마해 안료로 사용했던 선인들의 지혜도 놀랍기만 했다.

수만 년 혹은 수 억년의 세월을 간직한 광물들이 시대를 뛰어넘어 현대 화가들과 만나 발색되는 과정 자체가 감동적이다. 맑은 품위를 지녔으면서도 반짝거리는 빛을 가진 오묘한 안료에 나는 그만 깊이 매료되고 말았다.

진채는 작업 과정 자체가 구도의 길 같다. 꼼꼼하게 고른 비단을 염색해 나무틀에 씌운 뒤 아교와 풀을 섞은 교반수로 앞뒤를 여러 번 칠해 자연바람에 말린다. 그 뒤 먹 선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석채를 아교 물에 개어 칠하는데 그림 뒷면을 먼저 채색한 뒤 앞면을 그린다. 이젤을 세워놓고 서서 그리는 서양화와 달리 진채는 절하듯이 엎드려 작업해야 한다. 오체투지 같다. 붓을 통해 석채와 비단이 만나는 순간은 긴장되고 정성스럽고 경건하다.

안료가 가진 매력 때문일까. 전시작품 중 이하응의 초상화를 모사한 <흑건청포본>의 푸른 옷 빛이 우아하고 기품 있으면서도 화려하게 느껴진다.

안내에 따르면 진채는 `수묵화에 억압되고 분채 위주의 일본채색화로 왜곡'되어 왔다고 한다. 게다가 서양화풍에 밀려 단절될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묵묵하게 외로운 길을 걷는 작가들이 고맙고 존경스럽다.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하고 맑은듯하나 두텁고 은은하면서도 선명한 우리 그림 진채. <법고와 창신>으로 단단히 자리매김하길 기원한다. 그 길을 걷는 막내가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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