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머무는 고개
구름이 머무는 고개
  • 김경수<수필가>
  • 승인 2017.07.3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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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경수

어느 노인이 나무그늘 아래서 점을 치고 있었다. 그때 길을 지나던 한 젊은이가 자신의 앞날이 궁금했다. 젊은이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출세를 하여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었다. 젊은이는 노인에게 점괘를 믿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노인이 말했다.

“젊은이가 내 말을 믿고 안 믿고는 젊은이의 마음이요. 허나 진실은 점 속에도 있다는 것이오.”

젊은이에게 그런 말들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젊은이는 노인의 입에서 자신이 듣기 좋은 소리를 듣고 싶었다. 노인은 젊은이의 급한 마음은 알겠지만 처음 만나는 운은 구름이 쉬어가듯 서두르지 않는 것이 어떠할는지? 하고 말했다.

젊은이가 왜냐고 물었다. 배가 다가와 사공이 젊은이에게 손을 건넬 때는 세상이 수려한 듯 보이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 배는 좌초되어 사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대만 홀로 남아 구름처럼 떠다니는 운이니 조금 늦더라도 고개를 돌려 십 년을 기다렸다가 기회를 얻어봄이 어떠할는지 하고 일러주었다.

누가 그 말을 믿고 기다릴 수 있을까? 젊은이는 첫 번째 운을 흘려보냈다가 기회가 찾아오지 않으면 어찌하느냐고 물었다. 노인은 그것 또한 운이요, 기회가 왔어도 잡지 못하는 것도 운이요, 기회를 모르는 것도 운이요, 기회를 다루지 못하는 것도 운이요, 기회를 만들 줄 아는 것도 운이라고 했다. 하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노인은 대기만성이라는 말을 아느냐면서 웃으며 그 자리를 떠나갔다.

세월이 흐른 뒤 젊은이는 고을에서 제법 박학다식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졌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을의 사또가 젊은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순간 젊은이는 지금 당장 그 손을 잡지 않으면 기회가 올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더 큰 기회는 없을 것 같았다. 젊은이는 그의 곁에서 일을 돌보는 관원이 되었다. 사람들은 젊은이를 우러러보면서 사또처럼 대할 때도 있었다. 젊은이는 그럴 때마다 우쭐거리며 으쓱거렸다. 젊은이는 노인의 말이 헛소리처럼 들려왔다.

시간은 점점 여러 날을 흘러갔다. 그런데 갑자기 사또에게 중대한 일이 생겼다. 사또는 젊은이를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사또가 떠나고 난 후 새로운 사또는 젊은이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젊은이는 외톨이가 되어 예전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에게 십 년이 지나도 기회 같은 것은 오지 않았다.

젊은이는 노인을 찾아가 자신의 모습을 물어보았다. 노인은 그 모든 것은 젊은이가 택한 일이라고 했다. 노인은 다만 바람을 보고 물결이 치는 것을 보았을 뿐이라고 했다. 노인은 젊은이에게 운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 수 있는 거라면서 그 자리를 툴툴 털고 일어나더니 구름처럼 어디론가 사라졌다.

만약 젊은이가 노인의 말대로 한번을 거르고 십 년을 기다렸다면 어찌 되었을까? 과연 노인은 젊은이의 운명을 알고 점을 친 것일까? 흔히 젊은이들은 우선 급한 마음에 눈앞에 보이는 것을 기회라 여기고 뿌리치거나 견뎌내는 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듯 보일 때가 있다. 운이란 주어지기보다는 맞이하는 것 일 수도 있다. 강태공이 때를 기다리듯 눈앞에 목마름이 절박한 순간이 아니라면 욕망도 기다리는 인내와 용기가 요구될 수도 있다. 욕망도 긴 안목으로 깊게 맞이할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욕망을 어찌 생각하고 어찌 다스리며 사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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