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82년생 김지영
  • 하은아<증평도서관 사서>
  • 승인 2017.07.2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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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 하은아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첫 번째는 그 저자의 유명한 정도이다. 그 예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들 수 있다. 이번 달 그의 신작이 나오면서 서점가에는 하루키 열풍이 불고 있으며 책은 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미디어에 작가나 책이 소개되는 경우가 그 두 번째이다. 유명 예능 프로에 작가들이 나오거나 혹은 유명한 사람의 인생 책, 추천 책으로 소개되면 또 베스트셀러가 된다.

지난 5월 청와대 초청 여야 원내대표 오찬 자리에서 노회찬 의원이 대통령 부부에게 선물해서 화제가 된 책이 있다. 바로`82년생 김지영'이다. 이 책 또한 베스트셀러가 됐다. 사실 이 책은 출간됐을 때부터 여러 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해 소개가 곧잘 되었다. 그럼에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책 내용과 닮아 있어 인정하기 싫은 나의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82년생 여자 중에 가장 많은 이름이 김지영이라 하여 책 제목을 그리 선정했다. 평범한 가정에서 삼남매의 둘째로 자란 김지영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했으며 아이 엄마가 되었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그녀의 삶을 이력서처럼 적어 본다면 특별할 것도 없이 2줄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2줄의 행간 속에는 여자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과 엄마로 살기 위해 참아내야 하는 숱한 어려움이 녹아있다. 우리는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았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나는 집안일과 맞닥뜨렸다. 결혼하기 전에 집안일은 나에게 `도와준다'의 개념이었다면 결혼 후에는 내 일이 되었다. 남편과 적절히 나누어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의 `나 정도면 집안일 많이 도와주는 거 아니야?'라는 말에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던 적이 있다. `이게 내일이니? 도와주게?'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싸울 것 같았다. 한참을 생각하고는 `우리는 집안일을 잘 나누어서 하고 있는 거지. 도와주는 게 아니라.'이렇게 대답했다. 남편은 후에 내가 대답을 안하니 자신이 잘못 말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김지영씨가 임신을 하고 남편과 대화하는 것을 읽으며 이 생각이 났었다. 김지영씨가 아이를 낳으면 포기해야 할 것들에 비하면 남편이 포기한다고 하는 것은 아주 사소한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말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남자는 집안일을 돕는 존재이지 주체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은 사소한 하나하나에 큰 공감이 된다. 기계가 다 해주는 집안일이 왜 힘들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의사와 1,500원짜리 커피 한잔을 먹고 있는 김지영씨에게 맘충이라 수근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김지영씨가 된 듯 화를 냈다. 하지만 더욱 불편했던 이유는 나도 김지영씨처럼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쉽게 `집안일이 뭐가 힘들어?' 혹은 `속 편하겠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애 키우고 커피 마시러 다니고.'라고 이야기 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쉽게 골라 읽지 않은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나도 모르게 집안일을, 전업주부의 삶을 인정하지 않았던 사실을 들킬까 봐 그랬던 것이다.

어떻게 사회를 바꾸자는 것은 아니다. 여자는 슈퍼우먼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삶과 노동에 대하여 우리는 제대로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이 아닐까. 머리로만 알고 입으로만 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부터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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