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하고 말리며 살아가기
권하고 말리며 살아가기
  • 백인혁<원불교 충북교구장>
  • 승인 2017.07.0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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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숲
▲ 백인혁

농촌에서 살다보니 일요일이면 논밭에 나가서 부모님 농사일을 도와드려야 했습니다. 이른 아침을 먹고 들에 나가 일을 하고 있으면 인근 들녘에도 많은 분들이 나와 일을 하십니다. 그러다 새참 때가 되면 서로 우리 집 새참 같이 먹자고 또는 막걸리 한잔 같이 하자고 부르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시골엔 닷새마다 장이 열립니다. 장날에 아버지를 따라 장에 가다보면 주막 앞을 지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앞을 지나려면 아는 사람이 있어 술 한 잔 하고 가자고 아버지를 부르십니다. 그러다 보면 술판이 벌어지고 화기애애한 가운데 너도 한잔 나도 한잔 서로 술 권하는 목소리가 길게 이어집니다.

혹 어디서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반드시 알려주어야 하는 것처럼 어서 와서 들어보라고 하고, 못 오면 찾아가서까지 들려주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먼 곳에 출타한 경우면 몰라도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신바람 나게 그 소식을 전하는 재미로 자기의 책임을 다한 것처럼 의기양양해 하며 살았지요.

살다가 누구네 집에서 일손을 구한다고 하면 자기 일처럼 나서서 서로 연락해 함께 도와주고, 어려움이 있다고 하면 서로 발 벗고 나서서 함께 해결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누구네 자식이 서울로 돈 벌러 간다고 하면 건강하게 잘 지내다 오라고 꼬깃꼬깃 아껴 두었던 돈 한 닢을 건네주고도 적어서 도리어 미안해하시던 이웃집 아주머니 모습, 남이 아닌 남으로 형제같이 서로를 아끼며 사시던 어른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요즘 아파트에서는 이웃이 누구인지 어떻게 사는지 무관심하게 사는 것이 편한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식들 다 떠나고 홀로 식탁에 앉아 밥 한 그릇에 김치 한 가닥 놓고 한 끼를 해결하려 하면 왠지 눈물이 흐를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만의 울타리를 쳐놓고 외로운 섬처럼 생활하는 현실이 비참하게 느껴진다면 옛날에 살던 모습을 한 번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아니다 싶으면 지금 당장 지인의 전화번호를 눌러 보세요. 그리고 하소연도하고 근황도 전해주며 어디 아프다고 하면 아는 지식도 전해주고 내일 만나서 막걸리 한잔 하자고 또는 차 한 잔 하자고 권해 보시지요.

안 찾아오는 자식들만 기다리지 말고 그들은 다 하는 일이 바빠서 그러려니 해두고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과 놀러도 가고 집에 틀어 박혀 있는 친구는 달래서 운동도 같이 하며 서로가 없으면 못살 것처럼 아웅다웅 하면서 재미나게 살아 보시지요. 그러다 문득 손주 생각이 나면 조그만 선물하나 챙겨들고 대중교통 이용해 만나러 갔다가 늦기 전에 또 얼른 집으로 돌아오세요. 그러다 보면 세상사는 쏠쏠한 재미가 저 마음 깊은 곳에서 모락모락 솟아오를 겁니다.

좋은 일 잘될 일은 나만 어떻게 해보려 하지 말고 서로 권해주기도 하고 누구한테 좋은 말 들으면 얼른 전화해서 알려도 주고 혹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려고 하면 찾아가서 밥 사주며 말리기도 하고 그래도 고집부리며 하다가 잘 못되면 위로도 해주면서 이렁저렁 죽는 날까지 외롭지 않게 살아보기를 권해 봅니다.

우리가 잊어버리고 산 것이 무엇일까요? 아마 좋은 것 잘될 일 권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잘못될 일 하고 있거나 하러가는 사람을 말리지 않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혹 “그 일은 내 일이 아니니까 걱정할 것 없어”하면서 미소 짓고 있지는 않나요?

그 미소 뒤에는 외로운 고독의 지옥이 따라오고 좋은 일 권하다 설혹 잘못되어 지옥 가더라도 내 곁에 함께 따라오는 친구가 있지 않을까요. 같이 먹고 같이 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생각으로 오늘을 살아간다면 우리들의 얼굴에는 행복의 미소가 번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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