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려 살아야
어울려 살아야
  • 백인혁<원불교 충북교구장>
  • 승인 2017.05.2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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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유의 숲
▲ 백인혁

“왜 오늘은 놀러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어?” 하시며 걱정을 하시던 어머니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런 날은 전날 친구와 싸웠거나 다투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도 그것을 알고 계셨기에 걱정을 하시며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린애들이 친구들과 어울려 놀아야 건강한 아이라는 생각을 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친구와 놀려면 서로 어디서 놀자고 약속을 하지 않아도 노는 장소가 정해져 있어서 그냥 거기로 가면 친구가 와 있거나 조금 기다리면 친구가 와서 놀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 친구가 멀리 여행을 가거나 친척집에라도 가게 되는 날이면 놀아줄 친구를 찾아다니다 놀 시간을 허비하는 때도 있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시간 여유가 생기면 함께 놀아줄 친구를 먼저 찾게 됩니다.

어울려 놀 때를 생각해 보면 서로 역할을 정해 노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와 친구는 무슨 역할을 맡을지라도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역할을 조금 못했어도 아니면 잘했어도 신나게 노는 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어울려 놀면서 흥겹게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했습니다. 그렇다고 상대방이 내 흉내를 내는 것도 아니고 내가 상대방처럼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대로 있으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 하면서 흥겨웠습니다.

중학교 때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떠오릅니다. 빛에 삼원색(빨강, 초록, 파랑)이 있고 색에도 삼원색(빨강, 노랑, 파랑)이 있다 하시며 빛의 삼원색이 완벽하게 섞이면 하얀색이 되고 물감의 삼원색이 완벽하게 섞이면 검정이 된다는. 그저 빨강은 빨강대로 파랑은 파랑대로 노랑은 노랑을 유지한 채 서로 비율에 따라 어울리어 섞일 뿐인데 세 가지 색상이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상의 모든 색을 만들어 내듯이 자기의 색깔을 유지한 채로 잘 섞이는 것이 어울림입니다.

시골에 살던 아이를 도시로 전학시킨 후 어느 날 아이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보니 시골에서 전학 온 촌놈이라고 아이들이 함께 놀아 주지 않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울려 주지 않는 것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를 우리는 잘 알지 못하고 삽니다.

자신과 다르면 어울리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비단 아이들뿐일까요? 색깔도 같은 빨강이라 할지라도 단색에서 우러나는 단조로운 빨강보다는 여러 가지 색들이 함께 섞인 빨강이 더 세련되고 깊은 멋이 우러나듯 우리의 삶에서도 서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때 더욱 아름다운 데도 말입니다.

나와 다르고 우리와 다른 삶을 살아도 그들 나름대로 다 역할이 있고 다른 삶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빛을 발합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 모든 물건들은 다 나와 어느 한 면(사고, 습관, 행동, 모습 등)에서는 어울릴 수 있습니다.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지 상대방을 나와 다르다고 나처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이웃집에서 쿵쿵거린다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라고 요구할 수는 없지요. 차라리 쿵쿵거리는 소리를 듣기가 어려운 내가 이사를 해야겠지요. 어느 날 이웃집 사람들을 만나면 조금 쿵쿵거리는 소리는 들을만한데 큰소리로 쿵쿵거리면 심장이 두근거려서 그렇다고 조금만 작게 해달라고 사정을 하거나 나 스스로 그 소리에 익숙하도록 노력하는 방법이 함께 어울려 사는 방법일 것입니다. 힘든 일이 있으면 같이 해결하고 같이 쉬는 세상, 즐거운 일이 생기면 같이 즐기고 기뻐하며 춤추고 노래하는 세상이 우리가 모두 바라는 세상일 것입니다. 함께 어울려 살아갈 때 우리는 모두 자존감이 넘쳐나고 각자 사는 보람을 느끼며 축제 같은 자신의 삶을 엮어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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