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사곽란
토사곽란
  • 정세근<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7.05.2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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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

예전의 봄도 이랬나 싶다. 아직 여름이라기에는 이른데 날씨가 30도까지 오르니 기분이 영 그렇다. 반팔을 입기에는 이른 계절인데도 사무실에서는 반팔로 지낸다. 맨 위층인 까닭에 복사열이 보통이 아니다. 방에 들어서면 벌써 후끈 거린다. 하기야 여름에 냉방기를 틀어놓아도 땀이 날 정도니 지금부터 이렇게 더운 것이 무리가 아니다. 5월 중순부터 선풍기는 돌아간다.

사무실의 창을 모두 이중창으로 바꾸고 나서 나아지긴 했다. 그러나 그것은 겨울에나 통하는 말이다. 처음에는 이중창이 별 소용 있을까 의심했는데 겨울에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안으로는 열을 간직하고 밖으로는 열을 빼앗기지 않으니 훨씬 나았다. 그러나 여름은 달랐다.

안으로 보존할 시원한 열도 없는데다가 밖에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보다 천정에서 내리쬐는 열기가 더 대단하니 더위가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퇴임교수들이 그랬다. 4층에서 수십 년을 보낸 사람의 얼굴은 찌든다고. 복사열을 막기 위해 여러 방도를 시도한다고 하지만 돈이 없어서 그랬는지 결국 새발의 피였다.

더위에 지쳐 시원한 것을 먹자는 의견에 횟집을 찾았다가 옴팡 탈이 났다. 나만이 아니라 같이 먹은 사람의 증상도 똑 같았으니 내 문제가 아니라 그곳의 문제임에 틀림없었다. 덕분에 많은 것을 알았다. 도움이 되리라 싶어 그 사이에 얻어들은 것을 소개한다.

숙성회(선어鮮魚)가 탈이 더 날까, 바로 잡은 회(활어活魚)가 탈이 더 날까? 나도 당연히 숙성회가 더 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름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의견은 날랐다. 냉장숙성 시키는 동안 그 속에 있는 병원균들이 죽는단다. 따라서 위험하기로는 바로 잡은 회가 더 하단다. 내 이야기를 들은 두 사람이나 그렇게 말했다. 나도 전문지식이 없어 책임은 지지 못하니 잘 판단하기 바란다.

문제는 회만이 아니라 도마나 칼에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접시별로 탈이 다는 경우가 많단다. 회식자리에서 이 좌석은 괜찮은데 저 좌석에서는 모두 탈이 나는 경우가 있으니 상당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숙성회, 즉석회가 문제가 아니라 다른 것이 문제일 수 있다.

다음날 횟집에 전화를 걸어 조심하라는 뜻에서 이야기를 했더니, 상당히 사무적으로 받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괜찮았냐고 하니 그렇단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 탁자가 재수 없는 경우에 속했다. 그러더니 우리 보험에 들어놓았으니 식사영수증, 병원영수증을 보내면 물어주겠단다. 요식업중앙회에 가입하였으니 그쪽에서 처리해준단다.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하는 것이 속상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쿵저러쿵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탈이 나면 그냥 넘어가지 말고 전화라도 한 번 할 일이다.

오랜만에 힘들었다. 이른바 토사곽란(吐瀉?亂)이었다. 처음에는 몸이 으슬으슬 춥다가 머리가 띵해지더니 속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식후 서너 시간 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결국 위액까지 올라오는 사단을 맞았다.

그런데 다음날 횟집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사람 몸 참 놀랍게도, 생선비린내가 너무도 역겨운 것이었다. 그 와중에 난 `무엇'이 그 냄새를 역겹게 느끼게 했는지 참으로 궁금했다. 생존기제겠지만 음식에 대한 이런 본능적인 거부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도 정말 신기했다.

십대에 번데기 먹고 탈이 나서 수년간 냄새도 맡기 싫었던 것이 떠오른다. 지식, 경험, 자극, 반응, 기억, 추리, 예측 등등이 모여 있는 나의 코가 놀랍다. 우리가 찬양해야 할 우리의 몸은, 따라서 머리가 아니라 코라는 생각 들었다. 코로부터 멀어진 우리 몸을 더운 날 물고기가 떠올려주었다.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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