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집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집
  • 임형묵<수필가>
  • 승인 2017.05.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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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육지에 살면 바다가 보이는 집이 그리워집니다. 육지에 살다 보면 여자들이 그러하듯이 가끔은 남자도 바다가 보이는 집이 생각나곤 합니다.

바다가 내게 오라 합니다. 아무 준비 없이, 그 어떤 것 챙길 것 없이 그저 편하게 집을 나서랍니다. 육지에 있는 집에 살 때면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에, 보험료 통보서에, 가끔 대출 상환하라는 독촉장에 상 찌푸리며 근심과 걱정으로 시름하는데, 그러지만 말고 훌훌 털고 나오랍니다. 때로는 아들딸이 직장생활 하며 고민거리 있어도 짊어질 만큼 짊어져야지 무리하지 말라며 걱정 아닌 걱정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떠나보라 합니다.

뭐 그렇다고 육지에 있는 집이 싫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육지에 있는 집에서도 쏠쏠한 재미는 있습니다. 멀리 있는 딸애가 집에 온다고 할 때, 오고 나서는 어버이날이라 엄마 아빠에게 봉투 하나씩 슬며시 테이블에 올려놓을 때면 꿀꿀했던 기분이 풀어집니다. 지난해 말부터 서울 본사로 발령 난다 해놓고 회사의 늦은 결정에 답답해하던 아들이 5월이 되어서야 원하던 소식을 듣고 얼굴 펴지는 날이 있듯이, 뭐 그런대로 육지에 있는 집에서도 있을 만합니다. 가끔가다 바다가 있는 풍경이 그리울 때면 가까이 있는 상당산성에 오르거나 대청댐 가는 길까지 자동차로 드라이브를 떠나며 파도의 울렁거림에서 벗어나곤 합니다.

중부지방에서 남해 끝으로 이어지는 여행길이 멀기도 멀지만 바다를 상상하며 다가가는 길이기에 그리 무료하지는 않습니다. 아내 또한 못난 남편 만날 지치고 힘들어할지라도 바다가 그려내는 풍경을 본다는 설렘에 잔소리는 저만치에 밀어둔 듯합니다. 늘고 늘어난 주름살에 납덩어리 매단 듯 처진 눈두덩이 살로 항변해 왔지만 바다로 향하는 지금 얼굴빛은 사과나무 꽃처럼 환하고 환합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집에 있으면 시계를 보지 않아도 됩니다. 몇 시냐고 굳이 묻지 않습니다. 멀리멀리 나갔던 고기잡이배가 파도를 이겨내고 들어옵니다. 한옆에선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이 그보다 작은 배에 올라 고기잡이 채비를 합니다. 그렇게 어부와 바다는 한 몸이 되어갑니다.

바다를 내려다봅니다. 너울마저 없어 편안한 마음으로 바다를 받아들입니다. 가끔은 도로를 달리는 차량의 소음으로 주변의 정적을 깨지만 잔잔한 파도가 은빛으로 물결 치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무덤덤하게 넘겨버립니다. 비스킷이나 참외 한 조각을 입에 넣어도 육지에서 먹을 때보다 맛이 있습니다. 종이컵에 물을 붓고 선식을 타 먹어도 그런대로 어울리는 밥상입니다.

조용한 아침입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거친 소음과 욕설과 잡음으로 도시가 달아오르겠지만, 지금 이 고요한 아침에는 묵언 수행하는 사람들만 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옆 사람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며 그 분위기에 녹아듭니다. 지난 하루를 정리하고 새날을 준비하는 그 작은 몸짓 하나에 감사하며 바다를 내려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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