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직업’ 굴레 쓴 음성군 공무원
‘극한 직업’ 굴레 쓴 음성군 공무원
  • 박명식 기자
  • 승인 2017.05.01 19: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수첩
▲ 박명식 부장(음성주재)

조류인플루엔자(AI) 위기경보 단계가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 조정되고 AI 재난안전대책본부도 방역대책본부로 전환했다.

사실상 정리 수순을 밟고 있지만 AI 악몽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지난해 11월 16일 음성군 맹동면에서 전국 최초로 AI가 발생, 확진이 판명되면서 음성군 공무원들은 5개월이 넘는 동안 가축질병과 사투를 벌였다.

통제, 거점초소 운영, 상황실 근무, 270만 마리 가금류 살처분에 공무원들은 주·야간·휴일을 망라하고 동원됐다.

특히 AI 담당부서인 축산식품과 직원들은 초죽음 지경의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당했다.

이들 직원은 매월 200시간이 넘는 초과근무를 하면서 농장주의 욕설과 자살 협박까지 감내해야 했다.

농민은 닭을 다시 넣겠다고 난리... 충북도청 담당자는 입식 못하게 막으라고 난리... 어쩌라는 것인지... 힘없는 말단 공무원들만 중간에서 죽어났다.

일부 직원은“농민이 자살하기 전에 내가 먼저 죽을 것 같았다”고 토로할 정도였다.

삐약이 아이를 키우는 방역팀 여직원의 경우 양육문제 해결을 위해 할머니 집으로, 고모 집으로, 이모 집을 오가며 전국투어를 해야 했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가축방역팀장은 석 달 동안 집에도 못 가고 끼니도 제대로 못 챙긴 채 하루 15시간 이상을 격무에 시달렸다.

이렇게 모든 것을 견디며 겨우내 AI와 사투를 벌였던 이들 공무원에게는 육체적·정신적 고통보다도 정말로 슬픈 것이 있다.

가축전염병으로 고생한 군 공무원 대부분이 수의직이란 것이다. 또 이 같은 상황이 매년 반복되면서 올겨울에도 이들은 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요즘은 두려움까지 엄습해 오고 있다.

살처분 보상금 지급, 재입식 승인 등 할 일이 태산인데 일도 마무리 못하고 또다시 AI 상황이 닥쳐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직원에게는 이룰 수 없는 큰 소망이 있다. 바로 면서기로 인사이동이 되는 것이다.

이들은 올해만이라도 조금이나마 편한 자리에서 근무할 수 있다면 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버틸 수 있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음성군의 인사 규정상 수의직은 이 자리에서 퇴직할 때까지 벗어날 길이 없다.

순환 보직이 당연한 행정직 자리와 달리 인사 규정상 제한적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갓 들어온 수의직 공무원들은 AI, 구제역을 한번 겪고 나면 퇴직이라는 극단적 생각까지 하게 된다.

지난해 경북 성주군에서 AI 업무를 담당하던 공무원 정모씨(40)가 과로로 숨졌다.

음성군도 이 같은 불행한 사태를 겪지 않으려면 수의직 직원들을 위한 충분한 안식과 처우개선, 사기진작을 위한 인사규정 개선 등의 대책 마련이 시도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극한 직업'의 굴레를 쓴 이들은 남들이 선망하는 공무원으로서의 꿈과 희망 그리고 미래를 잃게 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