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탄식
봄의 탄식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7.04.24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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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시간이 빠르다고 느끼게 마련이다. 기쁘거나 아름다운 시간은 더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처럼 같은 길이의 시간이라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다른 길이로 인식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면 사계절 중에서 가장 짧게 느껴지는 계절은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도 봄을 꼽는 사람이 제일 많을 것이다. 과학적인 분석으로도 봄이 짧아진 결과가 자주 보고되긴 하지만, 사람들이 봄이 짧다고 느끼는 것은 대부분 정서상의 인식에서 기인한 것이다.

올 때는 느릿느릿 기어왔다가 갈 때는 후다닥 뛰어가는 봄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송(宋)의 시인 왕안석(王安石)도 마찬가지였다.

봄의 원망(春怨)

掃地待花落(소지대화락) 땅 쓸고 꽃잎 떨어지기 기다리는 것은
惜花輕著塵(석화경착진) 꽃잎에 먼지 함부로 달라붙을까봐서라네
遊人少春戀(유인소춘련) 상춘객들은 봄 아끼는 마음이 적은지
踏花却尋春(답화각심춘) 꽃잎 밟으면서 봄을 찾아 나선다네


흔히 사람들에게 꽃이 피는 것은 기쁜 일로, 꽃이 지는 것은 슬픈 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말들을 하지만, 이것을 일률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꽃이 피는 것 자체가 기쁘고, 꽃이 지는 것 자체가 슬픈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시인은 피고 지는 것을 떠나 꽃을 아낀다. 그래서 떨어진 꽃조차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이것은 시인이 꼭 봄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봄을 담담히 받아들이되, 봄 풍광을 있는 그대로 아끼고 즐기는 달관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시인의 꽃을 대하는 모습은 봄을 호들갑스럽게 즐기려는 사람들하고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꽃이 질 것에 대비하여, 시인은 마당을 깨끗이 쓸고 있다. 그 이유는 떨어진 꽃에 먼지가 달라붙을까 봐서이다. 그런데 꽃을 즐긴다는 상춘객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봄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 하는 행동을 보면, 봄을 전혀 아끼지 않는다. 떨어진 꽃잎을 마구 밟으며, 봄을 찾으러 다니는 모습은 떨어질 꽃을 위해 마당을 쓰는 시인의 모습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봄은 꽃으로 시작해서 꽃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꽃에 환호하지만, 꽃을 아낄 줄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봄을 아끼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면, 꽃을 즐기기에 앞서 꽃을 아끼기부터 해야 한다. 지는 꽃을 위해 마당을 깨끗이 쓰는 마음을 헤아리는 것만으로도 설레지 않은가?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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