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의 의미
사과의 의미
  • 임성재<칼럼니스트>
  • 승인 2017.04.20 20: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말논단
▲ 임성재

JTBC 뉴스룸의 손석희 앵커가 지난 19일 방송 중에 자신들의 보도에 대해 사과했다. “여론조사 데이터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숫자가 잘못 들어갔습니다. 어제 방송이 나간 뒤 오류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민감한 대선 국면에서 큰 실수였습니다. 시청자 여러분과 양 후보 측 관계자에 사과드립니다.”라고. 아무리 작은 실수라도 잘못을 했으면 진심을 담아 사과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손석희 앵커의 사과가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동안 우리 언론이 보여준 사과의 형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언론에 사과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더라도 대단히 권위적이다. 독자나 시청자가 수없이 항의하고 언론중재위원회나 법원 같은 곳을 찾아다니며 법에 의존하는 절차를 거친 후에야 정정보도나 반론문을 실어주는 것으로 끝내는 경우가 허다했다. 언론보도가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만큼 큰 피해를 주었다 해도 피해보상은 커녕 결과는 마찬가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 JTBC가 보여준 것은 우리 언론들이 닮아 가야 할 사과의 모습이다.

그런데 언론이나 권력자들처럼 힘이 있는 사람은 사과에 인색하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기보다는 힘으로 억누르려하거나 온갖 꼼수를 동원해 회피하려고 한다. 상사가 아래 직원에게, 지휘관이 병사에게, 어른이 젊은이에게, 정치인이 주민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풍토가 확산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풍토를 만들기 위해 솔선해서 앞장서야 할 정부나 지자체도 사과에는 인색하다. 주민의 의사를 수렴하지 않는 독선적인 행정으로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예산을 낭비해도 책임지기는커녕 형식적인 사과조차도 하지 않는다.

엊그제 국방부는 진천군에 설치하려던 미군훈련장을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철회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인데 수개월 동안 천막치고 노숙하며 삭발까지 하면서 항의해온 진천군민들에게 사과는 없었다. 마치 재검토를 하는 것이 진천군민들에게 시혜를 주는 것처럼 여기는 것 같다. 이런 일은 지자체에도 비일비재하다. 주민들의 동의나 논의과정 없이 단체장 자신의 의지만으로 추진한 행사가 예산만 낭비한 채 성과 없이 끝나도 사과는커녕 실적과 내용을 부풀려 발표하기에 급급하다. 지방의회도 마찬가지다. 그것도 권력이라고 의원 신분을 이용해 자신의 이권을 챙기거나 온갖 비리, 비위사실이 드러나도 사과는커녕 서로 눈감아주기 급급하다.

주민들의 투표로 선출된 사람일수록 사과에 더 익숙해져야 한다. 궁지에 몰려 마지못해 하는 사과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를 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자신을 뽑아준 주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과에 면책특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과는 별개이다. 범법행위를 저질렀을 때는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행위에 대한 진정한 뉘우침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을 때 사과는 유효하다. 무턱대고 사과만 한다고 해서 그 진정성을 인정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970년 12월,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 앞에 한 남자가 헌화를 하고 돌아서려다 차디찬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당시 서독의 빌리브란트 총리였다. 독일의 만행으로 고난받은 유대인들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한 것이다. 사과는 용기다. 그 사진 한 장은 아직도 전 세계인의 뇌리에 남아 진정한 사과의 모습으로 회자하고 있다. 사과는 개인의 삶이나 역사를 돌아보는 자기 성찰의 과정을 통해 나타난다. 그래서 진정한 사과 한마디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진정어린 사과가 일상화되는 사회를 꿈꿔본다.

이승훈 청주시장이 항소심에서 벌금 400만원을 선고받은 원심보다 훨씬 중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에서 이대로 확정될 경우 그는 시장직을 잃게 된다. 그렇게 되면 개인적으로 안쓰럽고 불행한 일일 뿐 아니라 청주시민들에게도 불명예를 안겨주는 일이다. 대법원판결시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수 있으나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신을 뽑아준 청주시민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 그것이 도리다. 그리고 대법원의 최종 판결 때까지 자신을 지지해준 시민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시정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