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카와 카
리어카와 카
  • 김경수<시조시인>
  • 승인 2017.04.0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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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경수

겨울 찬비가 바람에 흩뿌리는 늦은 오후 골목길이 시끌거렸다. 늘어선 차들이 경적을 울려대지만 차들은 꼼짝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슬그머니 창밖을 보았다.

악바리 영감이 눈에 들어왔다. 잘은 모르지만 고희를 훌쩍 넘은 나이에 리어카 하나로 의지하며 동서남북 가리지 않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악착같이 산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 같았다.

또한 고집불통 영감이었다. 그에게는 돌봐야 할 어린 손자와 손녀가 있다고 했다. 악바리 영감은 박스나 폐지를 주워 수입을 만드는 듯 보였다. 그날도 악바리 영감은 골목길에 리어카를 세워놓고 쓰레기 더미 속에 끼어 있는 박스를 주우려고 시간을 끌고 있었다. 그렇다고 차에서 내려 악바리 영감을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차들은 소리를 지르며 그들의 바쁜 시간을 재촉하였다. 악바리 영감은 못 들은 것인지 못 들은 척하는 것인지 묵묵히 쓰레기 더미만 뒤적거리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길이 막힌 골목길은 큰길로 이어지는 교차로까지 차들이 늘어져 줄을 이어 갔다. 누군가 차창을 열고 리어카를 당장 치우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악바리 영감은 획 돌아보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을 던졌다.

“이걸 빼야 갈 것 아냐?”

순간 내 귀에는 나도 살아야 될 것 아냐 하는 소리로 들려왔다. 그러자 또 누군가 박스 값을 주겠다고 나섰다. 악바리 영감은 그 사람을 무서운 얼굴로 쳐다보았다. 곧바로 악바리 영감은 박스 하나를 들어 리어카에 실었다. 하지만 그 뒤로 또 하나의 시간이 지체되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을 차들이 리어카를 피해 빠져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악바리 영감은 아무 말도 없이 리어카를 끌고 골목길을 향해 천천히 발을 옮기고 있었다.

겨울 찬비에 온통 뒤범벅이 된 악바리 영감의 얼굴은 마치 비장한 각오라도 숨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골목길은 이미 길이 아니라 강물이었다. 빗물은 낮은 골목길을 따라 순리대로 흘러갔지만 악바리 영감의 발길은 역류로 흘러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차들은 악바리 영감의 발자국과 리어카의 바퀴자국을 따라 느릿느릿 뒤를 쫓아가야만 했다.

악바리 영감이 리어카에 끌고 가는 것은 박스가 아니라 삶을 끌고 가는 것이었다. 어쩌면 리어카가 악바리 영감의 삶을 끌고 가는 것일 수도 있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다. 그 누가 길을 가로막고 남의 시간을 빼앗고 있다면 화가 나는 일일수도 있다.

상반된 것들은 어찌 공존해야 하는가? 누구에게는 박스 하나에 생존이 걸려 있는 삶일 수 있고 누구에게는 그 시간이 황금 이 걸려 있는 삶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눈감고 덮어주어야 할 일들이 종종 있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해 남에게 불편함과 밉상스런 얼굴로 비춰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잘못과 모순을 들춰 나무라거나 제지시키려고 비난하려 든다면 그들은 갈 곳을 잃게 되고 삶의 설 자리 또한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거지가 밉다고 거지의 쪽박을 깰 수는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 것이다. 강자와 약자가 공생하면서 공존해야 하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것에 대해서 양보와 배려가 쉽지 않은 듯 보인다. 다만 불편함과 미운 짓에 대한 문제 제기가 될 때 해결 모색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숙제로 남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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