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려식물을 기른다
나는 반려식물을 기른다
  • 이창옥<수필가>
  • 승인 2017.03.2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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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이창옥

남향바라기인 우리 집 베란다에는 봄이 두어 걸음 일찍 찾아온다. 밖에서라면 좀 더 기다려야 할 라일락이 좁쌀 같은 꽃망울을 부풀리고 있고 재스민도 올해는 제법 많은 꽃을 선물하려는지 꽃눈이 풍성하다. 덩달아 다육식물들도 오랜 시간 기다림의 갈증을 풀어내듯 여보란 듯 여기저기 꽃대를 길게 올리고 꽃을 피우고 있다. 예전 같으면 다육이 맵시를 위하여 가차없이 잘라버렸을 테지만 올해는 꽃이 다 질 때까지 기다려줄 요량이다.

가끔 우리 집을 방문하는 지인들은 집을 둘러보며 놀란다. 먼저 베란다에 가득한 화분들 숫자에 놀라고 아파트임에도 버젓이 장독대를 만들어놓고 간장 고추장 된장단지를 가지런히 올려놓은 모습에 두 번 놀란다. 그리고 안주인인 나를 돌아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놀란다. 하루 절반 이상을 가게에서 일하며 언제 그 많은 화분을 관리하며 된장 고추장은 어떻게 담아 먹는지 아무래도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들이다. 지인들의 그런 표정세례를 받을 때마다 그저 멋쩍게 웃고 만다. 다육 화분들과 초록 식물들은 치킨점을 하며 살아오는 동안 내 속내를 모두 들어준 오랜 친구였다는 것을 그네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치킨점을 시작하면서 열 평 남짓 좁은 공간에 갇혀 살게 되었다. 커다란 재단 가위로 닭을 조각내고 지방 덩어리와 각종 불순물을 제거하는 일도 버겁지만 생닭의 비릿한 피 냄새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섭씨 170도가 넘는 튀김기 앞에서 닭을 튀기는 일도 녹록지 않았다. 하루하루 고문 같은 날들을 2년쯤 보내고 나니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말한다. 치킨점은 그래도 편한 직업이라고. 그들이 어떤 잣대로 그리 말하는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각종 매스컴을 오르내리며 창업 1순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대다수사람들이 프랜차이즈 치킨점을 너무 만만하게 보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그런데 그 옆에 폐업 1순위란 꼬리표도 나란히 붙어 있는 것을 그들은 도외시한다는 것이다.

본사에서 공급하는 닭을 그대로 튀겨 배달만 해주면 끝이라 생각한다면 그네들 말처럼 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오랜 경험으로는 보내주는 대로 튀길 수 있는 닭은 단 한 마리도 없다는 것이다. 배달하는 일도 그렇다. 조금만 지체하면 여지없이 고객에게 항의전화가 빗발친다. 얄팍한 마진율에 인건비 무서워서 배달원을 고용할 수도 없고 위험천만한 줄 알지만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 남편은 오토바이 사고로 여러 번 목숨을 잃을 뻔했다. 지금도 나는 치킨을 들고 배달 나간 남편이 조금만 늦어지면 가슴이 두근거려 문쪽만 바라본다. 육체노동, 감정노동 거기에 목숨까지 담보로 내놓고 해야 하는 일이 프랜차이즈 치킨점이다. 이래도 편한 직업이라 할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 단언컨대 세상에 결코 만만한 자영업은 없다는 것이다.

치킨점을 하면서 맘 붙일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키우듯 나는 반려식물을 기른다. 고객과의 마찰로 신경이 곤두서고 우울해질 때나 남편의 사고로 혼자 견뎌내기 힘들었을 때도 내 곁에는 다육식물들이 있었다. 말라버린 잎을 정리하고 벌레를 잡아주기도 하며 혼잣말로 수다를 떨다 보면 어느새 힘든 시간은 살아낼 만한 시간이 되었다. 다육은 오랜 시간 내 스트레스를 묵묵히 풀어주고 치유해준 고마운 벗이었다. 오늘은 벗들이 견뎌낸 인고의 시간들을 생각하며 그동안 정말 고마웠다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시원한 물 샤워를 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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