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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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은아<증평도서관 사서>
  • 승인 2017.03.27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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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 하은아

모든 일에는 항상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좋은 쪽과 그렇지 않은 쪽, 밝은 쪽과 어두운 쪽. 그 두 가지가 합해져서 하나의 무언가를 말해준다. 우리네 역사도 그러하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을 맞이하고 한국전쟁을 거쳐 `한강의 기적'이라 불릴 만큼 눈부신 발전을 통해 오늘날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나라가 발전한 만큼 생활은 편리해지고, 소득과 교육수준은 높아졌다. 국민이 투표로 국민의 대표를 뽑는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민주주의 국가를 완성했다. 이렇게 발전하는 동안에도 잿빛 하늘과 같은 흐리고 어두운 역사가 함께 있었음을 가끔은 잊어버린다.

도서 `공터에서'(김훈 저)는 구름 잔뜩 낀 날씨와 같은 소설이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약초꾼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삶을 살다 스러져간 아버지 마동수의 삶과 피난 내려오는 길에 첫 남편과 딸을 잃고 피난지에서 마동수와 만나 두 아들을 낳고 키운 이도순의 삶. 마동수와 똑같이 생긴 두 아들의 삶이야기가 마치 눈 오기 전 하늘과 같이 찌뿌드드하게 펼쳐진다.

역사서도 아닌데 역사서를 읽은 듯하다. 마동수와 이도순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남자와 여자로서의 인생살이가 엿보인다. 목숨이 붙어 있기 때문에 살아야 하고 자식이 있기 때문에 살아가야만 하는 그런 삶이었다. 어떤 목표나 목적도 보이질 않는다. 오늘에 충실히 살아가는 그런 범인의 삶이었다. 그 부모세대를 보고 자란 두 형제는 부모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하나 늘 그 굴레 속에 살아가는 이야기로 소설은 그려진다.

저자 김훈은 본인의 마음 깊은 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기억과 인상의 파편들을 엮은 글이라 했다. 그만큼 한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럼에도 역사적 사건이라 하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못함을 전해주고 있다.

이 책도 저자 김훈의 다른 책처럼 문장이 간결하다. 군더더기 없으며, 문장 구조가 단순해서 이해하기도 쉽다. 그만큼 가독성도 좋다. 다만,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이 평범하지만 딱히 희망적이지도 않다. 소설 속에서라도 핑크빛 미래를 봤으면 하는 마음에 책장을 덮는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이 편치를 않다.

나는 마동수의 아들 마차세의 딸 마누니가 사는 세상을 공유하며 살고 있다. 그렇다면 마차세는 나의 아버지 삶을 대변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흰 머리가 오늘따라 더 고단하게 느껴진다. 거칠어진 손과 얼굴 주름이 지나온 세월인 것 같아 애써 로션을 발라 부드럽게 만들어 드리고 싶다. 아버지의 따뜻한 등과 엄마의 포근한 품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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