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초리
위초리
  • 이은희<수필가>
  • 승인 2017.03.27 18: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 이은희

잔가지들이 참으로 붉디붉다. 홍매화 위초리가 나의 시선을 끈다. 마치 인간의 몸 안에 실핏줄이 일제히 하늘로 솟아 생명의 피돌기를 보여주는 듯하다.

아니 붉은 가지들이 팔을 벌려 하늘을 숭배하는 형상이랄까. 여하튼 겨울을 이겨낸 위초리의 붉은 손짓이 대견하다.

물관이 터질 듯 생명수가 흐르고 있음을 빛깔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형체 없는 아우성 속에서 홍매화는 높은 음역인 소프라노로 `나, 살아있어.'라고 목청껏 노래하는 듯하다.

긴긴 동면의 밤을 보내고 봄볕에 기지개 켜는 정원을 돌아본다. 갓 피어난 복수초와 노루귀 꽃에는 꿀 따기 경쟁이라도 벌어진 듯 꿀벌들이 오글거리고, 굳은 땅을 뚫고 올라온 갖가지 튤립과 수선화 여린 새싹들이 신통하다. 은사님은 지난해 정원에 거목의 홍매를 옮겨 심고, 흥분을 감추지 못한 걸 기억한다. 나무를 바라보니 겨우내 나무의 생명을 걱정한 주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무의 허리춤까지 짚으로 정성껏 감싸주고, 발치에는 흙이 두두룩하고 그 위에 벌초한 잔디를 거적처럼 덮어놓은 것이다.

은사님은 매화를 누구보다 아끼고 좋아하는 21세기 선비다. 당신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단원의 혼을 이어받으신 듯하다. 단원 김홍도가 때로는 끼니를 걸러야 할 만큼 가난했지만,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생활고 속에서도 그림을 팔아 매화나무를 사고, 친구들을 불러 매화를 감상하며 매화음(梅花飮)을 즐겼다고 전한다. 화선(畵仙)다운 고결한 인품을 말해주는 일화가 아닌가.

단원과 퇴계가 아끼던 백매 앞에 서 있다. 콩알만 한 고매화 꽃봉오리들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가지마다 매달고 위엄을 자랑한다. 지지난해 이 자리에서 지인과 매향과 매화차를 즐기던 추억이 스쳐 간다. 백매의 위초리도 홍매처럼 하늘을 향하여 한 점 부끄럼이 없다는 듯 솟은 형상이다. 그런데 나뭇가지가 붉은색이 아닌 여린 갈색이 아닌가.

백매와 홍매의 위초리의 색깔이 판이하다. 백매에 흰 꽃이 피고, 홍매에 붉은 꽃이 핀다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러나 몽매한 사람은 매화꽃이 다르면, 나뭇가지의 색도 다르다는 걸 오늘에서야 발견한다. 백매의 가지는 갈색이고, 홍매의 가지는 붉은색이다. 불현듯 권태응 시인의 “감자꽃”시(詩)가 입가에 읊조려진다.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붉디붉은 위초리는 꽃을 보지 않아도 붉은 꽃이다. 대상에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니 `다름'이 보인다. 이제껏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었던 자신을 발견한다.

사리에 어두운 눈과 가슴이, 자신을 속인 격인가. 표면에 드러난 암향만 즐길 줄 알았지, 나무의 생태를 모르는 단순한 인간이다. 홍매화의 가지는 암묵적으로 나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알리며, 깊이 사유하라고 주문한다. 따사로운 봄볕에 눈물이 질금거리는 꿈같은 오후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