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하기와 빼기
더하기와 빼기
  • 최명임<수필가>
  • 승인 2017.03.21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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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최명임

요염한 몸매와 흑진주 같은 피부에 눈빛까지 그윽하다. 가히 요부의 매력을 논할 만하다. 남편은 그녀와 인연을 맺더니 한동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보기만 하면 마음이 달아올라 애인을 쓰다듬듯 하고, 멀찌감치 떨어져 있을 때마저 끈끈한 눈길을 주었다. 이 애정행각을 볼 때마다 나와 흑진주의 우선순위가 잠깐 불분명해진다.

사람들은 자동차를 두고 자존심이라는 둥 애인이라는 둥 말이 많다. 한낱 마차가 진화하더니 그 격이 적반하장이다. 사람의 됨됨이로 격을 따져야 하거늘 마차의 가치로 격을 따지며 자존심 세우기에 열심인 사람들이 많다. 남편 역시 거리를 활보하는 당신의 명패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흑진주와 함께한 시간도 십 년을 훌쩍 넘어섰다. 둘은 환상의 궁합이었다. 덜퍽진 뒤태와 실팍한 가슴으로 제 소임을 다했고, 주인을 도와 가난한 살림도 불려주었으니 내 눈에도 미쁘다.

언제부턴가, 남편을 홀렸던 요부의 눈빛에 그늘이 들고 살결은 희끗희끗 노인성 반점이 드러난다. 슬그머니 새로운 그녀에 눈독을 들인다. 풍객의 행색으로 곁눈질하는 모습이 달갑지 않았는데 그에 일을 저질렀다.

새로 만난 연인은 은회색 피부에 이국적인 눈매로 세련미가 뚝뚝 떨어진다. 애첩을 어르듯 어루만지며 웃고 있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갑자기 춘향가 한 대목이 떠오른다. 원하는 것을 취하고 행복감에 젖었다. 어느 즈음에 가서는 얼굴을 붉히며 `내 이제 너를?.'하고 뒷걸음을 칠 것이다.

이 사람, 흑진주를 떼어놓고 오면서 뒤를 돌아본다. 인연을 내려놓으려니 그간의 정이 밟히는 것이다. 자꾸 마음이 켕긴다더니 코가 시큰거린다고 콧등을 문지른다. `이런- 나는 왜 콧등이 시큰거리지?'

버리고 취하는 것에 익숙한 세태에 유난히 더 서운해할 일은 아니다. 채우기보다 비워야 하는 나이가 되니 허한 마음이 사소한 것에도 반응하는 것이다.

그도 나도 황혼에 접어들었다. 잔뜩 짊어지고 버거워하는 것들을 내려놓아야 할 때다. 얄궂은 것이 마음이라 움켜쥐는 것에만 셈이 빠르다. 비중이 큰 것은 더 놓기가 어려운데 놓아버리면 나 또한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언제까지 이 무거운 것들로 업을 지을는지 모르겠다.

저승꽃이 만발하면 욕심과 아집이 더욱 강해진단다. 그 또한 두려움 때문일까. 자신을 송두리째 내려놓아야 하는 두려움이 아집과 집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노년에 마음이 한가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마음을 닦는데 게을리하지 않은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는 일을 두고 애면글면 속을 끓이다가 “도대체 이것이 무엇이간디?” 하고 툭 놓아버린 순간이 있었다. 살 것 같았다. 십 년 묵은 체증이 쑤욱 내려간 듯 숨길이 뚫렸는데 그렇게 하나 둘 비워 내다보면 내 노년의 모습도 제법 아름다워지리라.

흑진주 이야기가 뜸하다. 새 연인에 대한 설렘도 평상심으로 돌아왔다. 가고 오는 인연 역시 내려놓고 취하는 것과 같아서 그것에 얽매이면 사는 것이 고달파진다.

마차가 겁 없이 진화한다. 비우고 채움에 있어 사람의 진정한 진화는 더욱 더뎌지는 세상이다. 비우고 채우는 것은 빼기와 더하기가 아니다. 우리를 한층 성숙하게 하는 실리적 셈법이다. 또한 살아있는 동안 가장 확실하게 하고 가야 할 숙제이다.

나도 진일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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