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
운동장
  • 정세근<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7.03.15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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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

누구든 운동장에 대한 기억은 있다. 어렸을 때 뛰어놀던 기억이 가장 흔한 것이다.

운동장에서 우리는 무엇인가 놀이를 만들었다. 아무것도 없어도 재밌게 놀았다. 여학생은 고무줄 하나면 됐고, 남학생은 돌 하나면 됐다.

줄 하나 긋는 것으로 우리 편과 남의 편을 나눴다. 금 하나로 전쟁도 가능했고, 평화협정도 가능했고, 선전포고도 가능했다.

너른 운동장은 우리가 아무렇게나 금을 그을 수 있는 백지, 도화지와 같았다. 그곳은 자유의 공간이었다.

여학생의 고무줄을 잘라 도망치던 이야기는 하지 말자. 여학생에게는 씁쓸한 기억으로 남을 테니까.

더운 여름날 나무 밑 의자에 앉아 쉴 때의 시원함, 편안함도 기억한다. 운동장은 뜨거웠지만 나무 밑 그늘은 시원했다. 겨울에는 에너지 절약차원에서 겨울방학을 길게 하는 바람에 눈 쌓인 학교를 자주 보지 못하던 시절이었지만, 때로 내린 눈으로 누가 큰 눈사람을 만드는지를 다투며 손이 어는 것도 몰랐다.

나쁜 기억도 많다. 머리 박고 벌서던 기억, 조회라면서 부동자세로 오래 세워놓고 몸 안 좋은 학생들 푹푹 쓰러지던 기억, 독재의 시절 매스게임이랍시고 학생들을 잡아 놓고 온통 색지를 들게 했던 기억 등등.

고통의 장소이자 인내의 공간이었다. 무슨 큰 행사라도 열리면 학생들은 죽어났다.

그런데 나는 운동장과 관련되어 참으로 특별한 경험을 했다. 초등학교 때 비라도 많이 오면 운동장 정리하라고 늘 교실에서 쫓겨나서 노력봉사하던 것이 기억나는데, 중학교 때는 그러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때 운동장은 모두 그랬다. 진흙 같아 비만 오면 웅덩이가 생겼다. 울퉁불퉁 말이 아니었다. 날이 개고 운동장을 곱게 다지는 것은 순전히 학생의 몫이었다.

그러나 내가 다닌 중학교는 신기하게도 비가 오면 물이 쏙쏙 잘 빠지는 것이었다. 하도 신기해서 운동장 둘레를 돌아보았더니 배수구에서는 철철철 물이 빠지고 있었다. 어른들에게 물어보니 밑에는 자갈을 깔고 위에는 흙을 덮어 배수시설을 잘하면 이렇게 비가 많이 와도 배수가 잘 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화분처럼 굵은 돌, 잘은 돌, 모래, 그리고 흙을 넣어야 좋다는 말이었다.

나는 이 운동장의 예를 들어 교육의 엄정함, 미래를 보는 눈, 무엇부터 잘 만들어야 하는지를 말해왔다.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그때의 교장선생님의 안목을 나는 높이 샀다. 덕분에 미래의 아이들이 비가 와도 바로 뛰어놀 수 있었고, 야구장으로 써도 손색이 없었다. 교육부 관리에게도 말했다. 오늘만 보지 말고 내일을 보라고. 비가 오지 않을 때만 보지 말고 비 올 때를 생각하라고. 그리고 나에게도 다짐했다. 그런 운동장을 만드는 사람이 되겠다고.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혜택이 되는 그런 일을 하겠다고. 그래서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운동장은 그 자체로 나에게는 교육이었다. 그리고 운동장 때문에 나는 나의 중학교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무명의 설계자에게 존경을 표했다.

그런데 얼마 전 비밀이 밝혀졌다. 그곳은 한국전쟁 이후 부대가 주둔했던 곳이란다. 운동장을 파다가 방공호가 나온 것이다.

글쎄 육군병원도 그 근처에 있었으니 대규모 방공호는 필요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존경하던 사람은 교육자나 교육행정가도 아닌, 군인이었단 말인가? 운동장은 역시 군인이 교육자보다 잘 판단 말인가? 내 꿈의 운동장은 연병장이었단 말인가?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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