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첩경 이야기(爐邊閑談:노변한담) 2
사주첩경 이야기(爐邊閑談:노변한담) 2
  • 박경일<명리학자>
  • 승인 2017.03.0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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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로 보는 세상이야기
▲ 박경일

처음 명리학을 공부할 때 대개 자평진전(子平眞詮), 연해자평(淵海子平), 적천수(滴天髓), 궁통보감(窮通寶鑑) 등 중국의 고전을 공부하게 되는데 여간한 한문 실력 없이는 공부하기 힘들다. 물론 친절한 해설서가 있다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환경과 시대적 배경이 다른 그 옛날 중국 사람들의 사주감명을 현 세대에 적용하기는 다소 무리가 있다.

이런 어려움을 딛고 옛날 중국고전의 핵심적인 명리 이론을 우리 실정에 맞게 해석하고 실제 현대에 살았던 한국사람들의 사주감명 자료들을 실은 책이 바로 사주첩경이다. 지난번 `노변한담1'에서 이야기했던 선생의 매형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자.

매형이 죽기 몇 달 전 이석영 선생은 친구 주씨와 함께 당시 사주에 명인(名人)이라고 소문이 높이 난 김선생이란 사람을 찾아갔다. 시각장애인이었던 김선생을 보고 이석영 선생은 내심 얼마나 잘 보겠느냐 싶었다.

친구 주씨가 대뜸 “나 사주 한 장 보아 주우.”하고 말을 건넸다. “사주를 불으시오.” 김선생이 대답했다. “병진년 신축월에 임신일 임인시외다.” 친구 주씨는 사주를 외워서 말했다. “자세히 들으시오.”라고 김선생은 말을 꺼내더니 “부친은 건각(다리를 절다)이요, 처는 안맹(시각장애)이라, 어찌 한집안에 불구(不具)가 이렇게도 많더냐!”하고 문장으로 부르는 바람에 감탄했다.

사실 친구 주씨의 부친은 다리를 절었다. 그러나 처는 시각장애인이 아니었다. 그래서 주씨가 말하길 “부친은 사실 전각이요 하나 처는 그렇지 않수다.”라고 하소연하듯 말했다.

“신사년 가보시오.” 김선생이 말했다. 그 후 과연 신사년에(2년후) 친구 주씨의 부인은 안맹(眼盲-시각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그 친구가 보고 난 다음 이석영 선생은 매형 사주를 불러주었다. 선생의 매형은 당시 사주 보는 것을 상당히 좋아했다고 한다. 사주를 불러주니 김선생이란 사람이 대뜸 하는 말이 “이것 뭐 죽은 사주를 다 보려고 하우.”라고 말했다.

“죽기는 왜 죽어요, 살아있는 분인데요.”이석영 선생이 따지듯 말했다. “허 참 딱하시군. 지금 살아 있는 것은 나도 알고 있소. 하나 이제 몇 날 안 가서 죽는데 금년 기묘년을 못 넘길 것이니, 하다못해 섣달 그믐날 죽어도 죽을 것이니, 십이월 그믐날 못 넘겨 사는 걸 가지고 사주는 무슨 사주를 본단 말이오.” 김선생이 안타깝다는 듯이 말하며 더 이상 보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석영 선생 본인의 사주를 불러주었다. “이 다음 남쪽에 가서 사주보아 먹을 사주요. 사주보면 이름 높이 날거요.”김선생이 말하였다.

이석영 선생의 조부님 말씀과 김선생의 말이 모두 정확하게 맞았다. 하지만 그 이치를 알 수 없어서 매우 고심하다가 선생이 역학을 공부한 지 10여년만에 그 진리를 터득하였다고 한다. 본인이 10년이 걸린 것을 후에 공부하는 사람들이 2~3년만 열심히 하면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설명해 놓았다는 말을 남기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후에 자강 이석영 선생은 위 김선생(본명 김선영)의 제자가 되어 역학을 공부하였다. 도계 박재완 선생과 우리나라 명리학계의 쌍벽을 이루었던 선생에게 상담을 받기 위해 수백명이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했지만 이석영 선생의 가장 큰 업적은 한국적 명리학을 토착화시킨 명저 `사주첩경'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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