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영어교육의 성공
대한민국 영어교육의 성공
  • 정세근<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7.03.0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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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

우리나라 영어교육은 성공했는가? 아무도 긍정하지 않을 정도로 엉망인 것은 다 안다.

영어를 6년, 10년 했어도 말 한마디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요즘 학생들은 듣기 시험이 있는 바람에 우리 시대보다 훨씬 낫지만, 우리보다 앞선 시대도 엉망이었으니 그만큼 잘못된 어학교육의 폐해가 시대를 넘어 전승되었다는 이야기다.

수학능력시험 영어 듣기 시험시간에는 비행기도 못 뜨게 할 정도니, 대한민국의 영어에 대한 관심은 지대한 듯하다. 그러나 말하기가 왜 이렇게 젬병일까?

크게 보아 동서양언어의 차이도 있다. 한자어는 시각언어인 반면, 인도유럽어는 청각언어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한자는 아무렇게나 읽어도 뜻만 통하면 되고, 인도유럽어는 잘못 읽었다가는 뜻이 달라지기 때문에 소리에 민감하다. 이를테면 스물넷의 추사 김정희는 북경에 가서 말을 담는 그릇만으로 중국지식인들과 필담을 나눌 수 있었다.

문화의 차이도 있다. 말을 번드르르하게 잘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어눌(語訥)한 걸 좋아했던 공자 이후로 `말 잘하면 사기꾼'이라는 정서가 있었다.

하지만 서양인들은 논리학을 좋아했다. 서양문화권에서 수사학(修辭學)은 말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말을 잘하는 법을 가리킨다. 비교해보자.

우리는 `그 사람이 왜 이리 수사가 많아'라고 싫어하지만, 서양에서 수사학(rhetoric)은 대학의 필수과목이었다. 인도도 자신만의 5단 논법인 인명학(因明學)을 발전시킨 나라다.

영어에서는 소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탓에, 우리는 발음이나 대화를 뒷전으로 했다.

나도 `r` 발음의 어려움을 일찌감치 깨닫고 이 학원 저 학원에서 검증도 해보았지만 결국은 미국 가서 알았다. 내 'r` 발음을 못 알아듣는 미국인들 앞에서 나는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오, 신데렐라(Cinde'r`ella)의 어려움이여!

소리언어권에서는 발음을 못 하면 언어를 못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문법지식은 웬만한 영어 강사도 놀란다. 좋게 말하면 우리의 의미 우선의 언어원리가 돋보이는 순간이고, 나쁘게 말하면 그렇게 문법을 잘하면서도 언어를 그렇게 못 할 수도 있느냐는 의문을 건네주는 기회다. 단어, 문법 알면 뭐하나? 소통이 안 되는 걸. 그리고 언어의 가장 주목적이 의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미의 교환에 있는 걸.

많은 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배울 때, 5만큼 배웠으면 5만큼 써먹는다. 그러나 우리는 5를 배웠어도 1~2도 못 써먹는다. 우리는 10 정도 배우면 그때야 3~4를 써먹는 것 같다. 단어도 모르고 문법도 모르는 중동친구들이 영어를 잘하는 것 보면 억울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소용없다, 미국인은 떠드는 중동 아이들이 말 없는 우리나라 사람보다 훨씬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북구는 영어교육에서 확실히 성공했다. 덴마크를 비롯한 스웨덴, 노르웨이, 그리고 우리와 어순이 같은 알타이어를 쓰는 핀란드까지, 미국인들이 놀랄 정도로 영어를 잘한다. 대학 정도 다니면 미국 애들이 미국사람인 줄 알 정도다. 어려운 단어를 내가 많이 알면 뭐하나? 말을 못하고 소리도 똑바로 내지 못하는데.

그러나 우리나라 영어교육에서 성공한 것이 하나 있다. 그건 사람을 평가하는 척도로는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다. 영어점수에 따라 취직도 하고 승진도 한다. 영어는 사라지고 영어점수만 남은 꼴이다. 공부는 사라지고 수능점수만 남은 꼴이다. 사람은 사라지고 ㎏만 남은 꼴이다. 어이, 70킬로 이리와.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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