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다 지난 것이거늘
모든 게 다 지난 것이거늘
  • 안승현<청주시문화재단 팀장>
  • 승인 2017.02.0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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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 안승현

음력 정월초 하루. 온 가족이 모여 차례상을 준비하고, 향을 사르고 차례를 지냈다. 뭐 그리 급한지 꿈에 보이던 아버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생각나던 아버지를 바쁘다는 핑계로 들르지 못했던 차에 성묘를 서둘렀다.

햇살은 눈 부시도록 맑았다. 아버진 우리가 무척이나 보고 싶었나 보다. 예상대로 성묘를 가는 길은 여지없이 차량으로 길고 긴 줄이 이어졌다.

마음은 급해지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그러다 코너를 도는데 차의 뒤축이 돌더니 앞범퍼가 옆 차를 치고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지점으로 밀려갔다. 순간 살아야겠단 생각에 미끄러지면서도 핸들을 반대쪽으로 돌렸다.

이내 에어백과 안전벨트 화약이 터지고 차 안은 연기로 가득 찼다. 콘크리트 중앙분리대를 박으며 5명 가족이 탄 차는 주행하던 반대방향으로 미끄러졌다. 후에 뒤따르던 동생의 블랙박스로 사고장면을 보니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했다.

정월 정초에 이 무슨 일인가? 주변에서 다들 한목소리로 액땜했다고 한다. `죽지 않은 건만으로도', `크게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도'라고 위로를 한다.

그런데 액땜치고는 너무나 큰 충격이다. 며칠의 시간이 지났지만 빙판만 보면 몸이 절로 움츠러들고 이내 체한다. 당일 붓기만 했던 몸이 이곳저곳을 거치며 저리고 통증이 이어졌다. 이 몹쓸 상황은 무언고.

그래, 그래도 우리 가족이 무사하니 다행이지, 이만하길 다행이지라며 스스로 위안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속내는 다행으로 여겨지질 않았다. 주변의 이야기가 위로가 되지 않았다.

20여 년 전, 난 책상 앞에 무릎 꿇고 간절히 빌었다. 내가 원하는 대학 학과에 들어가게만 된다면 무엇이든 이겨내고 뜻한 바를 이루겠습니다 라고. 그렇게 병중에서 입시 미술을 시작했고, 병원과 학원을 오가며 입시를 치렀다. 그런 후 결과를 기다리던 초조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당시 미술교사의 꿈은 접었지만 그래도 내가 하고 싶었던 그 어릴 적 꿈을 실현해 나가고 있지 않으냐고 마음을 다독인다. 2001년 여름 한참 공사 중이던 건물 앞을 지나며 “나도 저런 건물에서 일해봤으면” 하고 아내에게 건넸던 희망처럼 “지금 난 그 회사에서 일하고 있잖아”, “이렇게 우리 가족 잘 살아 있잖아”라고 말이다.

다 지난 일인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지금의 내가 여기까지 와 있음에 감사해야 함을 이성적으론 알고 있다. 그런데 시간을 거슬러 나의 어린 시절, 나와의 약속이나 뜻한바 이룸에 감사하고 되새기면서 긍정적 마인드로 전환 하려 해도 위안이 되질 않고 가슴 한편이 저리고 먹먹하고 아프다.

조금만 조심했어도, 조금만 잘 해드렸어도, 조금만 더 찾아뵈었어도…. 사고 이후 그곳을 가야 된다고 하는데 마음뿐이고 발길이 허락하지 않는다. 아픈데 병원에 가고 싶지 않고, 누워 있고 싶지도 않다. 가고 싶은데 가고 싶은 않은 마음. 이거 뭐지. 그러면 그럴수록 같이 하고 싶은데 같이 할 수 없는 내 아버지만 그리워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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