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내어 품은 달
비워내어 품은 달
  • 안승현<청주시문화재단 팀장>
  • 승인 2017.01.24 1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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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 안승현

푸르스름하고 청량하기까지 한 새벽녘 손톱 달이 눈에 들어옵니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명절을 지나 보름이 지나면 저 달도 찰 만큼 차서 둥근 달이 되겠죠.

정월 대보름. 일월이 아닌 정월(正月)입니다. 담백하면서도 풍요로운 감성의 빛을 보이기에 늘 설레는 달이죠. 너무 벅찬 달이기에 그달을 보면서 늑대로 변해 울음을 토해냅니다. 우~~우~~

그리 둥글지 않으며, 면 또한 그리 고르지 않은 그달을 담아낸 백자 달항아리를 보면서 가슴으로 짖어댑니다. 우와~~

반닫이 위에 늘 오롯이 놓여 있는 항아리는 몇 년 전 분청작업을 하는 작가로부터 떼를 쓰다시피 하여 구입한 작품입니다. 분청사기작가가 어떤 이유에서 백자항아리를 만들었을까요. 유일하게 만든 백자작품, 그래서인지 유백색의 작품은 더욱 따스하고 포근하게 느껴집니다.

이 달항아리는 목물레에서 한 번에 끌어올려 만들지 않았습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발(사발 모양의 그릇)을 만들고 그 발을 포개어 형태를 빚어냅니다. 그렇기에 주구(입구)에서부터 흘러내리는 선이 어지간히 멋스럽습니다. 그리고 몸통을 받치고 있는 굽(바닥)은 주구보다 작아 달이 둥실 떠 있는 것 같죠.

남자들의 사랑방 한켠에 사방탁자가 있고 그 위에 조선 항아리의 백미, 달항아리가 있습니다. 달항이는 무엇이었을까요. 달의 빛을 받아 방안에 달을 들여놓고자 했을까요. 아님 억불정책에 의한 불교의 발우가 변형된 것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유교를 숭상하는 선비의 고결함을 표현한 것일까요. 아마도 여자를 멀리하고 공부를 하다 여자가 생각날 때를 대비해 마련한 글래머러스한 여인의 엉덩이였을지도 모릅니다.

형태나 면에서 그 어떤 치장도 없는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받아 다양한 작업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아낌없는 찬사를 쏟아 냈죠. 미술사학자이자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이신 혜곡 최순우 선생, 미학자 우현 고유섭 선생, 김환기 화백, 도상봉 화백, 구본창 사진작가, 서양화가이자 설치미술가인 강익중 작가, 조선인보다 더욱 조선공예를 사랑하고, 일본 민예운동을 일으킨 사상가이자 연구가인 야나기 무네요시까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많은 시인이 달항아리를 테마로 시를 짓고, 공예작가들이 그 맛을 재현해내고 표현하고자 많은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구를 기본으로 하는 단순한 형태로 볼 수 있는데 만들어내는 사람마다 각각 다른 형태로 감성으로 들어옵니다.

일본이나 중국의 항아리, 서양의 항아리들이 더는 손을 댈 수 없을 정도의 장식을 할 때 우리는 유백색의 달항아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지금 제 앞에 있는 달항아리는 그 예전의 작품은 아닙니다. 그러나 늘 새로운 형태로, 다사롭다가도 보드라운 살결로 들어옵니다.

같은 대상이나 늘 새로운 것을 담아냅니다. 그리고 대화를 청합니다.

어떨 때는 어리숭해 보이다가, 한껏 교태를 부리다가, 찔레꽃 가지를 함초롬 담아내다, 청미래덩굴을 안고는 그 넓은 아량을 보이며 애교를 부릴 때도 많습니다. 참으로 멋진 조화입니다.

안과 밖, 욕심 없이 모든 것을 비워내고 어질다 못해 순종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다른 것과의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발현하는 것이겠죠.

비움에서 많은 것을 담아낼 수 있음입니다.

이제 정월 대보름이 다가옵니다. 한 해 농사의 시작과 풍요를 비는 날입니다. 새해 첫 보름달이니만큼 커다랗겠죠, 그달을 닮은 항아리만큼이나 큰 소망, 새해의 많은 소망, 정월 대보름달은 모두 담아 줄 겁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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