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진교통, 자본주의의 새 길을 뚫다
우진교통, 자본주의의 새 길을 뚫다
  • 임성재<칼럼리스트>
  • 승인 2017.01.1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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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 임성재

청주시내버스 중에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팻말을 붙이고 다니는 버스가 있다.

총 117대의 버스를 운행하며 청주 시내버스의 약 30%를 점유하고 있는 우진교통이다.

의아해하거나 항의하는 시민이 있을 법한데 그런 사람은 극소수고 많은 시민이 큰 용기를 냈다며 격려하고 지지해줘서 사원들이 뿌듯해한다고 한다.

경영자의 의지였을까? 김재수 대표는 아니라고 말한다. 사원들의 모임인 자치위원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할 때까지 붙이기로 스스로 결정했다고 한다. 자신의 역할은 그 일로 문제가 생기면 해결사로 나서야 하지만 지금까지 별 문제는 없었다.

우진교통에는 자주관리위원회가 있고, 그 밑에 임금자치위원회나 노동조건자치위원회 등과 같은 소위원회가 있어서 사내의 모든 문제를 결정한다.

자주관리위원회는 사원들 스스로의 조직이다. 회사나 경영자의 간섭을 받지 않는 의사결정 조직이다. 일반적인 주식회사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노동자자주관리기업'이라는 회사형태에 있다.

우진교통이 노동자자주관리기업이 되기까지는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우진교통은 2001년에 설립됐는데 설립 후 3년 동안 임금의 지연지급과 체불이 다반사여서 제 날짜에 월급을 받은 것은 서너 번에 불과했다.

참다못한 노동자들은 파업에 돌입했고, 결국 회사는 200억 원의 빚을 남기고 부도처리 됐다. 밀린 임금도 받지 못하고 모두 실업자가 되느니 우리노동자들이 회사를 직접 경영해보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당시 민주노총 충북본부 사무처장으로 우진교통의 파업을 지원하던 김재수 처장의 제안이었다. 그래서 280여명의 사원들이 각자 500만원씩을 내서 회사를 인수하고 직접 경영에 나섰다.

그때 우진교통 노동자들은 민주노총으로 복귀하려던 김재수 사무처장에게 회사 경영을 맡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20년 넘게 노동운동가로 살아온 그가 200억 원의 악성부채를 안고 있는 회사를 경영해서 300여명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책임져야 하는 대표이사 자리를 수락하기까지는 큰 결심이 필요했다.

겁도 나고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171일간의 파업투쟁으로 맺어진 동지애 앞에 그는 우진교통을 선택했다.

부도 당시 매년 17억 원 정도의 적자를 보던 회사가 노동자자주관리기업 1년 만에 1천만 원의 흑자를 냈다.

그걸 보면서 김재수 대표에겐 확신이 생겼다. 경영자가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지 않고 투명하게만 경영을 한다면 얼마든지 회사를 회생시킬 수 있고, 더 나아가 좋은 기업으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그래서 그가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회사의 모든 결정권을 사원들에게 맡기는 일이었다.

자신들의 임금과 노동조건, 복지조건 등을 자주관리위원회라는 회의체를 통해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고, 김재수 대표는 사원들의 교육에 집중했다.

자본에 저항하던 노동자들에게 스스로 경영자라는 인식과 회사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심어주는 교육, 시내버스의 공공성에 대한 교육과 서비스 교육, 운전노동자들의 험한 습관을 고치는 교육, 인간의 존엄성과 품격에 관한 교육에 이르기까지 우진교통의 교육프로그램은 차고 넘친다.

이렇게 12년이 흐른 지금, 우진교통은 사내에 비정규직이 없는 회사, 정년을 66세까지 보장하고 호봉제에 따라 경력이 쌓일수록 처우가 좋아지는 회사, 임금은 시내버스업계 최고 대우를 받으며 복지를 스스로 정하는 회사, 전 사원이 노동조합원이며 주주인 회사, 교육이 일상화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회사로 성장하여 우리나라 시내버스업계에서는 최고 좋은 기업으로 손꼽히고 있다.

우진교통에서 유일한 비정규직인 - 그는 3년 임기 때마다 주주총회, 즉 사원총회에서 투표로 재 선임되어 왔다 - 김재수 대표이사의 꿈은 주식회사 우진교통을 노동과 자본이 일치하는 협동조합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 노동자가 주인인 회사에서 시민이 주인인 회사로 전환하는 것이다.

청주시내버스의 준공영제 협의조차 지지부진한 요즘, 그의 꿈이 이루어져 시내버스가 단순한 이동의 도구가 아니라 도시의 문화와 교육, 경제와 소통을 아우르는 도시의 핏줄 같은 역할을 하는 공공재가 되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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