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겨울밤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7.01.02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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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겨울밤은 길고 춥다. 물리적인 시간으로만 긴 것이 아니라, 감성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도 겨울밤은 길고 춥다.

무슨 고민이 있어서 잠이 들지 않을 때 밤은 길 수밖에 없다. 또 외로우면 밤이 추울 수밖에 없다.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일이 모두 걱정 아닌 것이 없겠지만,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 것만큼 걱정이 절실한 것도 드물 것이다.

조선(朝鮮)의 시인 김삼의당(三宜堂)은 무슨 이유로 긴긴 겨울밤을 잠들지 못했던 것일까?

겨울밤(冬夜)

銀漏丁東夜苦長(은루정동야고장) 밤은 길어 괴로운데 물시계 치는 소리
玉爐火煖繞殘香(옥로화난요잔향) 남은 향기 감도는 따뜻한 화로
依依曙色生窓戶(의의서색생창호) 어렴풋한 새벽빛이 창문에서 밝아오는데
鷄則悲鳴月出光(계칙비명월출광) 닭 우는소리 처량하고 달빛 흐르네


시인이 기거하는 방의 겨울밤은 길기도 하고 고요하기도 하다. 이것은 시인이 무언가 큰 걱정이 있고, 곁에 아무도 없이 혼자 있음을 의미한다. 홀로 지내는 방이지만, 방은 정돈이 잘 되어 있고, 로맨틱하게 장식되어 있다.

방 한구석에 놓여 있는 물시계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또렷이 들릴 정도로 고요하기만 하다. 그리고 추운 겨울밤인지라 방 가운데에는 화로가 불을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방에 비치된 물시계와 화로는 예사 물건이 아니다. 물시계는 은으로 치장되어 있고, 화로는 옥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러한 치장은 사치스럽기도 하고 여성스럽기도 하지만, 이는 시인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온전히 기다리는 사람과의 로맨틱한 시간에 대비한 것이다.

그러면 하고많은 것 중에 왜 하필 물시계와 화로일까? 물시계는 시간을 알기 위한 것이지만, 이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겨울밤은 얼마나 긴 시간인지를 회화적으로 보여주는 시적 장치이다.

화로는 난방을 위한 것이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겨울밤의 차가움을 말하기 위한 시적 장치이다. 시인은 물시계와 화로를 통해 길고 차가운 겨울밤을 그리고자 한 것이다.

겨울밤은 길고 차갑다는 계절적 특성에 시인 자신의 외로운 마음을 교묘하게 중첩시키는 시인의 감각이 참으로 탁월하다. 물시계 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견디고 화로를 쪼이며 추위를 버티다 보니, 어느새 창문에 새벽빛이 어린다. 새벽을 알리는 닭소리도 슬프고 달빛 또한 희미하다. 모두가 님의 부재로 말미암은 것이다.

겨울밤은 길고 춥다. 이러한 겨울밤을 잠들지 못하고 지내기란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럴 때 억지로 자려고 하는 대신 감각의 문을 활짝 열고 겨울밤의 풍정(風情)을 느껴본다면, 얼마나 운치 있는 일인가?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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