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서 배운다
광장에서 배운다
  • 임성재<칼럼리스트>
  • 승인 2016.12.15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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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 임성재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들의 국정농단이 밝혀지면서 시작된 촛불집회는 어느덧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광장정치의 표본이 됐다. 12월 3일 국회의 대통령 탄핵가결 투표를 6일 앞두고 열린 촛불집회는 전국에서 232만 명이 모이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은 국민이 모이는 기록을 남겼다. 10월 29일의 첫 촛불집회는 2만명으로 시작했으나 3주째는 100만이 모였고, 6주째에는 232만명의 국민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선 것이다. 겨울로 들어서는 차가운 날씨와 뼛속 깊이 한기를 전하며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도 광장의 열기를 막지는 못했다.

충북에서도 11월 19일 집회에 1만2천여 명이 모였고, 12월 3일 집회에는 1만5천여 명이 모여 충북역사상 최대인파를 기록했다. 상당공원에서 육거리시장 쪽으로 난 도청서문 앞 도로는 촛불의 물결로 가득 찼다. 개개인이 모여 청주 시내를 가득 메운 촛불의 열기는 모두를 놀라게 했고 `함께'라는 뜨거운 연대의 힘이 발휘하는 가능성을 체험하기에도 충분하였다. 충북집회 사상 처음으로 대형 LED전광판이 2대 동원되었는데 한 대는 무대 위에 설치되었고, 또 다른 한 대는 뒤에 앉은 참가자들을 위해 도로 중간에 설치되었다. 그리고 크레인을 동원한 대형 음향장비가 설치되는 등 충북집회 역사를 새롭게 쓰는 사건이었다.

이렇게 몇 주 간격으로 650만 명의 국민이 모였건만 광장에는 폭력적인 행동이나 혼잡과 무질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인파에 꼭 끼어 100미터를 가는데 30분이 걸려도 밀치거나 짜증 내지 않고 기다리며 한 걸음씩 걸음을 내디뎠고, 무질서한 행동이나 폭력적인 행동이 보이면 `질서'나 `평화', `비폭력'을 외치며 광장에서 그런 행동을 퇴출시키는 성숙된 시민정신을 보였다. 그리고 광장에선 모두가 서로의 불편과 어려움을 보살피고 돌보는 동지였고 가족이었다. 추위에 떠는 어린아이에게는 무릎 담요나 털모자를 씌워주고 따뜻한 국물을 서로 나누었으며, 어깨를 부딪쳐도 발을 밟혀도 서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예의 바른 이웃이었다.

12월 10일, 청주 촛불집회에는 4천여 명의 도민이 모였다. 날씨가 춥기도 했고, 전날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난 뒤라 그 전주에 비해선 인원은 많이 줄었지만 -사실 청주에서 4천여명이 거리집회에 모이는 것도 사건이다- 열기는 그 어느 때 못지않았다. 그리고 유난히 가족단위의 참가자가 많았다. 국민이 광장에 모여 헌법을 지키지 못한 대통령을 탄핵시킨 역사적 현장을 자녀와 함께 하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날 집회 중에는 현장에서 모아준 성금을 어떻게 썼는지 설명하는 시간이 있었다. 지금까지 청주에서 열리는 촛불집회는 충북의 시민사회단체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을 제외한 정당 등 85개 단체가 모여 `박근혜퇴진 충북비상국민행동'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해왔다. 그동안 성안길에서 열렸던 집회들의 비용은 참가 단체들이 분담금을 내서 충당해왔다. 그러나 도청 앞 도로에서 진행하는 대형집회는 1회 비용이 1천만 원이 넘어 단체 분담금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집회당일 현장에서 모금을 진행했다. 모금함을 든 자원봉사자들이 집회군중 사이를 지나면 어린아이들과 학생들은 꼬깃꼬깃한 용돈을 모금함에 넣었고, 어른들도 서슴없이 지갑을 열었다. 그날 모금함을 정리할 때 행사진행자들 모두가 깜짝 놀랄 만큼 감격스런 일이 벌어졌다. 모금액이 천만 원이 넘어 그 날 행사비용을 모금액으로 충당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집회가 끝난 광장엔 쓰레기 하나 날리지 않는다. 백만 명이 모이는 광화문광장이나 1만5천명이 모이는 충북도청 앞 도로도 마찬가지다. 아예 쓰레기봉투를 들고 오는 시민도 있다. 촛불행사가 끝나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쓰레기를 치우는 일을 자신이 맡은 일인 것처럼 너나없이 솔선하여 종잇조각 하나 찾기 힘든 거리가 되었다.

우리 국민은 한결같이 헌정 질서가 지켜지고 정의가 승리하는 민주주의 나라를 올곧게 세우기를 열망한다. 물론 당장은 힘들지만 그런 세상을 후세들에게 꼭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광장에서 질서를 지키고 배려하고 양보한다. 내 것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광장을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교육의 장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광장에서 펼쳐진 촛불의 경험은 우리나라의 소중한 자산이다. 진정으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그날까지 촛불이 꺼지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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