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터널 증후군
공무원 터널 증후군
  • 양철기 청주 서원초 교감(박사·교육심리전공)
  • 승인 2016.11.30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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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 양철기 청주 서원초 교감(박사·교육심리전공)

그분은 재경부 내 모든 직원이 가장 같이 근무하고 싶어 했던 스마트하고 배려심 많은 고위관료였다. 그리고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영전했고, 지금은 소위 `조폭' 경제수석으로 법정을 들락거리는 신세가 되었다.

심리학자 아리엘 멜라리(Ari el Merari)는 자살폭탄 테러리스트들의 배경과 심리 상태를 분석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유복하고 혜택받은 엘리트 계층 출신이 많았으며 고학력자에 전문직종사자들이 많은 것을 발견했다.

신망 높던 그 경제수석은 왜 그렇게 망가졌으며, 그들은 어떻게 자살폭탄 테러리스트가 되었을까. 아리엘 멜라리는 그 과정을 `터널'에 비유했다. 터널을 통과하면서 평범한 이성적 인간이 국가의 근간을 흔든 부패 관료로 또는 테러리스트로 변모하는데 과연 터널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터널은 가늘고 긴 통로로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 입구에 들어가면 출구까지 빛이 없다. 외부 세계로부터 차단된다는 점과 시야를 작은 한 점에 집중시킨다는 점이다. 터널을 빠져나가는 동안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차단되고, 출구라는 한 점을 향해가는 와중에 어는 지점에서 시야가 좁아지는 시야 협착 증상이 나타난다. 흔히 어떤 집단은 그 자체로 터널의 역할을 해서 거기에 속한 이들의 시야를 다른 선택지가 보이지 않도록 좁혀버린다. 따라서 터널 속에 있는 사람은 터널 안이 세계의 전부가 된다. 자신이 좁은 터널 안에 있다고 여기지 않고 그곳이 전부라는 사고로 단순화되어 간다.

일단 터널 안에서는 소속된 집단에서 인정받는 일은 목숨보다도 중요하다. 소속된 집단으로부터 버림받는 일은 죽음보다 괴롭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동료에게 따돌림을 당하거나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이들이 종종 죽음을 선택한다. 작고 도망칠 곳 없다고 느끼는 집단에 소속돼 있을수록 따돌림이나 왕따, 승진에서 미끄러지는 일 등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된다.

청와대라는 닫힌 세계도 사람을 막다른 곳으로 몰아넣은 터널로 작용한다. 청와대라는 집단에서 하나의 생각만을 끊임없이 주입하면 그 생각은 그 사람 자신의 생각이 되고 그 집단에 대한 애착 때문에 그 생각을 뒤집거나 주변의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똑똑한 엘리트 관료 비서들이 한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오직 한 사람, 대통령을 위해야 한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주입된 것의 결과이다. 헌법 7조 1항,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공무원의 터널은 주권자인 국민을 바라보는 일이다. VIP의 뜻이라는 한마디에 합리적 의심과 견제는 생략되고 상명하복의 논리만 작동되는 공무원은 분명 터널증후군에 빠져 있다.

그런데 터널은 지금 근무하고 있는 그 사무실 내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내가 지금 나가는 모임 자체가 터널일 수도 있다.

그럼 지금 내가 터널에 갇혀 있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야기 주제가 주로 인사(人事)문제이면 터널 증후군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있다. 누가 어느 부서로 갈 것 같다, 누구는 승진 못 한다 등등의 이야기로 거품을 물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면 공무 터널 증후군에 갇혀 있을 가능성이 있다.

각종 모임이 줄을 이을 12월이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나눌 것인가? 터널에서 툭 터져 나와 철학교수는 철학을 논하고, 교감은 아이들의 인생과 행복을 논하고 사무관은 지원과 봉사를 논한다면…. 그 자리가 너무 재미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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