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나무의 고백
어느 대나무의 고백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6.10.19 2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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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의 시 읽는 세상

 

 

 

 

 

 

 

복 효 근

늘 푸르다는 것 하나로
내게서 대쪽같은 선비의 풍모를 읽고 가지만
내 몸 가득 칸칸이 들어찬 어둠 속에
터질 듯한 공허와 회의를 아는가

고백컨대
나는 참새 한 마리의 무게로도 휘청댄다
흰 눈 속에서도 하늘 찌르는 기개를 운운하지만
바람이라도 거세게 불라치면
허리뼈가 뻐개지도록 휜다 흔들린다

제 때에 이냥 베어져서
난세의 죽창이 되어 피 흘리거나
태평성대 향기로운 대피리가 되는,
정수리 깨치고 서늘하게 울려퍼지는 장군죽비

하다못해 세상의 종아리를 후려치는 회초리의 꿈마저
꿈마저 꾸지 않는 것은 아니나
흉흉하게 들려오는 세상의 바람소리에
어둠 속에서 먼저 떨었던 것이다

아아, 고백하건대
그놈의 꿈들 때문에 서글픈 나는
생의 맨 끄트머리에나 있다고 하는 그 꽃을 위하여
시들지도 못하고 휘청, 흔들리며, 떨며 다만,
하늘 우러러 견디고 서 있는 것이다

#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지요. 그렇다고 보이지 않는 것이 그냥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꼿꼿한 대나무도 청청함 뒤에 어둑한 이면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이치가 그렇듯,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화사한 가을 단풍 뒤에 숨은 계절의 고백도 대나무처럼 흔들리며 떨며 다만 견디고 서 있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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