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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2.2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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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의 거리
윤 명 숙 <충청대 경영학부 부교수>

엘리베이터와 같은 폐쇄된 공간을 두 사람 특히, 남성과 여성이 함께 있어야 하는 경우 우리는 어색하기도 하지만, 특히 여성의 경우 공포감마저 든다. 그래서 가능한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일부러 걸음 거리를 늦춰 함께 타는 것을 피하거나 계단을 이용하기도 한다.

또 기차나 버스에서처럼 좁은 좌석을 공유해야 하는 경우 옆 사람이 유독 뚱뚱하거나 심하게 다리를 벌리고 앉는 경우 우리는 불편함을 넘어 신체적 접촉에 따른 곤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것은 지하철에서 좌석의 가장자리가, 그리고 식당이나 카페에서는 구석 자리가 고객들에게 가장 선호된다는 조사 결과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리적인 사적 공간은 얼마나 되어야 할까. 한국의 '국민 주택'은 5인 가족 기준으로 볼 때 전용 면적이 84.81(25.7평)이라고 한다. 1인당16.5(5평) 정도가 된다는 말이다. 영국의 '파커 모리스 표준'에서도 1인당 필요한 최소 공간을 5평 정도로 잡고 있으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1인당 5평 정도가 되는 것 같다.

동물은 어떤가. 용인의 에버랜드 동물원의 사파리 월드는 동물을 풀어 놓을 때 마리당 495(150평)이상이 확보되도록 배치한다고 한다. 우리도 좁은 공간에 있으면 답답함을 느끼듯이 이 동물들도 공간이 좁으면 심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마다 동물마다 나름대로 필요한 공간은 다르겠지만, 사적인 공간은 상대방과의 거리로 결정되며 이 거리는 단순히 물리적 거리보다는 그 거리 속에 담겨져 있는 심리적인 거리 때문에 우리들의 관심 대상이 되는 것 같다.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물리적 거리를 통해 인간관계의 거리를 구분하였다. 그는 45.7cm 미만은 '친밀한 거리'로, 45.7cm~1.2m는 '개인적 거리', 1.2m~3.7m는 '사회적 거리', 그리고 3.7m 초과는 '공적인 거리'의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이 분류에서 결정적인 기준은 '그 순간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어떻게 느끼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배우자가 아닌 이성이 76.2cm 미만의 가까운 개인적 거리 안에 있으면 부적절한 관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서양화가 김일해는 인물화를 그릴 때 모델과 2.5m~3m가량 떨어져 그린다고 한다. 1m 미만에서는 감정이 개입되어 오히려 시각적인 관찰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란다.

왜 사람들이나 동물들은 이렇게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고 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일까. 에드워드 홀의 연구나 김해일 화가와 같이 물리적 거리든 심리적 거리든 거리에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개입되기 마련이고, 감정이 개입되면 늘 그렇듯이 착각, 오해, 실수, 잘못 등의 부작용이 뒤따르기 때문에 이것이 두려운 것일까.

사회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자기 영역을 방어하려는 본능적 충동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침해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개인적인 공간(personal space)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자유롭고자 하는 자신만의 영역을 방어하려는 소극적인 태도 때문만도 그렇다고 가까움에 따른 부작용이 두려워서도 아닌 보다 적극적인 방식임을 노래한 칼린 지부란의 시가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는 인간관계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존중이며, 상대방이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불가원(不可遠)'보다는 '불가근(不可近)'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게 한 한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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