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 쓰고 꼭 해야 하는 말
빌려 쓰고 꼭 해야 하는 말
  • 백인혁(형기) 원불교 충북교구장
  • 승인 2016.10.0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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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 백인혁(형기) 원불교 충북교구장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고구마를 심으려고 두둑을 만들기 위해 밭에 나가시면서 “인혁아! 옆집 가서 괭이 좀 빌려 와라.” 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어느 순간에 한 번씩 떠오르곤 합니다.

괭이를 여러 개 사두고 쓰면 될 것을 꼭 옆집에서 빌려 오라시던 아버지의 삶의 모습이 그때는 참으로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래, 그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은 철이 들었는지 “우리가 숨 쉬는 공기도 빌려 쓰고 살고 있지!”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땅 위에다 집을 짓고, 걸어다니고 또 농사를 짓는 일도 땅에게 잠시 그의 등을 빌려 쓰며 살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우리의 삶이 많은 걸 빌려 쓰고 살면서도 사용료도 내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저는 사용료도 내지 않고 빌려 쓰고 살고 있다는 사실이 염치도 없고 부끄럽기도 해서 내가 고마워해야 할 특정한 대상이 없더라도 누구에겐 고맙다는 마음을 전해야 할 것 같아 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를 입에 달고 삽니다.

아버지는 괭이를 다 사용하고 가져다줄 때에도 깨끗이 씻어서 꼭 가져왔던 그 자리에 가져다 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아, 또 쓸 텐데 무엇 하러 그러신지 모르겠다.”라고 투덜댈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 아버지는 고맙고 감사하다는 표현을 그렇게 하셨던 것 같습니다. 또한 괭이 주인이 괭이를 찾을 때에 불편을 느끼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나 싶기도 합니다.

내 물건이 아니라 함께 사용하는 물건이라면 함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을 쉽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또 사용할 수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우리는 함께 사용하는 물건일수록 더 소중히 생각하고 잘 사용해야만 합니다. 또 다른 누군가가 사용할 때 전혀 불편하거나 불쾌하지 않게 말이죠.

내 것이 많아야 하고 내 것 없으면 못살 것 같은 현실에서 실제로는 사용료도 없이 빌려 쓰는 것들 덕분에 우리가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우리는 참으로 많이 계속해서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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