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길
고향길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6.09.07 2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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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의 시 읽는 세상

 

 

 

 

 

 

 

신 경 림

아무도 찾지 않으려네
내 살던 집 툇마루에 앉으면
벽에는 여직도 쥐오줌 얼룩져 있으리
담 너머로 늙은 수유나뭇잎 날리거든
두레박으로 우물물 한 모금 떠 마시고
가위소리 요란한 엿장수 되어
고추잠자리 새빨간 노을길 서성이려네.
감석 깔린 장길은 피하려네.
내 좋아하던 고무신집 딸 아이가
수틀 끼고 앉았던 가겟방도 피하려네
두엄더미 수북한 쇠전마당을
금줄기 찾는 허망한 금전꾼 되어
초저녁 하얀 달 보며 거닐려네.
장국밥으로 허기를 채우고
읍내로 가는 버스에 오르려네.
쫓기듯 도망치듯 살아온 이에게만
삶은 때로 애닯기만 하리
긴 능선 검은 하늘에 박힌 별 보며
길 잘못 든 나그네 되어 떠나려네.

# 추석이 다가오면서 고향길도 가까워지는 듯합니다. 도시민들에게 고향으로 가는 길은 기억을 되돌리는 일입니다. 잊고 살았던 시간이 그리움으로 돋아나면서 쓸쓸함도 함께 찾아옵니다. 변해버린 모습들이 굴절된 기억을 파고들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고향집 툇마루에 앉은 듯 우물과 고추잠자리와 달과 장국밥과 별을 그려보는 것도 고향 가는 마음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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